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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있다, 부산문화의 길 <1> 해양문화콘텐츠를 찾아서

[창간 63주년 특집] 잠자는 바다문화를 깨워라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0-08-31 20:16:22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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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은 해양수도'라는 호기로운 선언이 실현되려면 그에 걸맞은 해양문화가 필요하다
- 콘텐츠가 될만한 자원을 찾아내 집적·재창조하는 작업을 시작할때다

오늘도 걷는다. 시작은 충무동 새벽시장이다. 여기서 시작하면 영도대교에 닿을 때까지 줄창 바닷가의 시장만 따라서 약 1.3㎞를 걸을 수 있다.

소설가 박완서 씨를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내 고향 개성은 워낙 번성한 상업의 도시여서 크고 작은 가게가 많았고 비가 올 땐 그 가게의 처마 밑으로만 다녀도 비 한방울 맞지 않고 예성강 포구에서 개성 시내까지 갈 수 있었다. '가게쟁이'가 많다보니 그게 깍쟁이가 되었다." 예성강 하구 벽란도에서 개성 번화가까지 거리는 12㎞다.

이 길다란 처마의 행렬과 깍쟁이라는 낱말은 고도(古都) 개성을 압축하는 경관으로 단번에 되살아났다. 몇 년 전 개성 관광이 한창일 때 북측 안내원들은 잊지 않고 이 처마와 깍쟁이를 설명했다. 낯선 이북의 도시 개성은 이 낱말들을 통해 수십 년 분단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자신의 개성과 옛 영광을 방문객들의 눈앞에 펼쳐보여주었다. '삶이 심란할 때 시장으로 나간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해본 분들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시장에 가면 '무조건' 살고 싶어진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고 시에서 썼던 사람은 폴 발레리였다. 이 시의 제목은 묘하게도 '해변의 묘지'다. '해변의 시장'에 와서 "시장에 왔다. 살아야겠다"라고 읊조리게 되더라도 그것은 영 엉뚱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

하지만 오늘도 1.3㎞에 이르는 부산의 바닷가 시장길을 걸으면서, 생각이 많다. 충무동 새벽시장, 충무동 해안시장, 자갈치시장, 마침내 영도다리. 갈치 민어 조기 해삼과 이름 모를 생선을 파는 좌판, 생선구이거리, 돼지껍데기집들, '곰장어' 노점상, 자갈치시장 건물과 해안데크, 정육점, '두투' 파는 집들, 신동아회센터…. 지독하리만치 구체적인 이 바닷가 시장거리는 '부산은 바다다'라는 규정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부산은 바다다'라거나 '부산은 항구다'라는 말은 어느새 껑충 뛰어 자칭 '부산은 해양수도다'라는 현대의 선언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거꾸로 해양수도가 되려면, 명실상부 해양도시로 공인받으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점검은 호기로운 선언에 비해 힘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말할 것도 없이, 부산은 해양도시다. 2009년 현재 한국을 들고 나는 컨테이너의 75.5%를 처리하는 곳이 부산항이다. 전국 어선의 49%가 있고 수산업의 27%를 생산하는 도시가 부산이다('부산시 2010년도 주요업무계획' 중). 부산시의 시책에서 해양·항만산업 육성은 언제나 윗자리에 있고 '부산의 미래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숱한 전문가들은 항만·해양·물류를 앞자리에 꼽는다. 바다로 먹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바다를 통해 뻗어나갈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이건 부산시 홈페이지만 들어가봐도 단박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한마디로 하면, 부산이 해양도시라면 그에 걸맞은 '해양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바다의 문화가 경제나 행정 같은 거시 영역뿐 아니라 시민의 삶 속에서 살아있고, 이것이 원동력이 되어 예술 문화 문화산업 등으로 창조되고 표출될 때 이름과 실질이 서로 맞게 된다.

오늘도 걷는다. 내친 김에 영도다리에서 중앙동 쪽으로 방향을 잡아 부산세관까지 간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 아래로는 '부두로'라고 지칭되는 거대한 도로가 항만과 시민의 삶을 갈라놓는다. 자갈치시장 건물 옥상에는 하늘정원이 있다. 누구나 무료로 갈 수 있다.그러나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막상 올라가도 좁고 담이 높아 바다의 조망을 생각 만큼 얻을 수 없다.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쉽다. 왜 이렇게 밖에 만들지 못했을까. 용두산공원에 올라가면, 중심도시 서울의 보문각 종과 다를 게 없는 시민의 종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도 부산 특유 또는 부산만의 바다냄새는 맡기 힘들다. 이런 사례는 부산 사회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다 따로, 시민의 삶과 문화 따로.

■부산의 유리한 조건을 활용하자

이렇게 해서 생각하게 된 것이 '해양문화콘텐츠 탐색'이다. "한국의 해양문화, 바다의 문화가 궁금하다고? 그럼 부산으로 가보라"라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또 그렇게 집적돼 있는 바다문화, 해양문화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예술의 기운을 뽑아올릴 수 있는 대표도시가 된다면, 부산 문화산업의 새 숨통도 거기서 열릴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부산에는 자원이 많다. 해양문화를 연구하는 대학의 연구기관들, 한국해양문학가협회, 많은 해양건축가들, 바다를 그리는 문학과 미술 등의 예술가들, 바다와 항구를 노래한 대중예술, 바다를 향해 열린 각종 체험프로그램들과 관람시설, 바다를 끌어안는 갈맷길과 조망지들, 바다의 품에서 사는 해양수산인과 시민들,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웃의 도시들…. 이런 자원과 관련해, 지난 1월 부산 영도 동삼동 혁신도시에서 기공식을 연 국립해양박물관의 건립은 분명한 의미가 있다.

찾아보고 알아보자는 것이다. 바다의 문화를 바탕으로 해양문화콘텐츠로 탄생시킬 수 있을 만한 자원이 부산의 어디에 어떤 노력을 하면서 존재하고 있는지. 이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집적시키고, 하나로 꿰어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것이 이 기획의 목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09년 문화원형 창작소재개발사업 지정공모를 진행했다. 진흥원이 지정한 공모 과제는 '세계 속의 한반도 해양문화원형 콘텐츠 개발'이었다. 이 공모에서 사업자로 선정된 곳은 중앙대 산학협력단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이었다.

이런 사례는 바다문화 또는 해양문화에 대한 관심이 결코 낮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산은 노력을 기울여서, 잘만 풀릴 경우 그 성과를 피부로 느끼기에 적합하다. 찾아보고, 알아보고, 만나보고, 집적하고, 꿰어보는 노력과 궁극에는 이 같은 일을 통째 맡을 주체를 세우는 노력은 부산의 문화예술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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