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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롯 유다의 최후. |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불명예스럽게도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다. 무엇보다 청소년 자살이 심각한 수준이다. 10대에서 30대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일 정도다. 자살은 명백한 살인행위다. 남을 죽이는 일이 큰 죄인 것처럼, 비록 자신의 목숨이라도 자살은 고귀한 생명을 죽이는 살인행위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든 자살은 정당화될 수 없고 그 누구의 자살이라도 자살이 미화돼선 안 된다.
오늘 소개하려는 성경의 인물도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자살로 마감한 가롯 유다라는 인물이다. 성경에 유다라는 인물이 8명이나 나온다. 다른 유다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제자 유다는 그의 출신지인 가롯을 붙여서 부른다. '유다'라는 이름은 히브리말로 '찬미(讚美)'라는 뜻이다. 이름대로 그도 한 때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다. 예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아 마귀를 쫓아내고 병든 자들을 고쳐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 잘못된 선택으로 그의 인생은 비참해졌다. 유다가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다만 당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의 독립을 강력히 원했던 부류들이 있었다. 유다도 그런 기대를 갖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닐까 학자들은 추측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의 기대와는 정 반대의 길을 걸으셨다. 3년을 따라 다녔지만, 유다의 눈에 예수는 이스라엘을 구해줄 메시야가 아니라 그저 용서와 사랑만 외치는 나약한 인물일 뿐이었다.
유다는 본전이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성경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유다에게 마귀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다고 전하고 있다(신약성경 요한복음 13장 2절). 욕심은 마귀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좋은 통로다. 결국 유다는 은화 30닢에 자기 스승을 팔아버리고 만다. 그러나 은화 30닢이 주는 흐뭇한 마음은 잠깐이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 유다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실은 이렇게 괴로워했던 이때가 유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순간적으로 욕심에 눈이 멀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다 이해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신약성경 히브리서 4장 15절).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순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심지어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죄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 용서해 준다고 말씀하신다(신약성경 요한일서 1장 9절). 그러나 교만해서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으면 죄의 열매가 그의 인생에 결론이 되다. 그런 인생은 결국 한때 실수했던 인생이 아니라 영원히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만다.
안타깝게도 예수님께서 여러 번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롯 유다는 돌이키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예수를 팔도록 사주한 대제사장을 찾아가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외치고 받은 은화를 내던진 후 결국은 나무에 목을 매어 죽는다. 그것도 부족해 땅에 떨어져 창자가 배 밖으로 나오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신약성경 마태복음 27장 3~5절, 사도행전 1장 18절).
안타까운 일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 것이 아닌 생명을 내 마음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내 생명을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다 쓰기도 전에 버려 버리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연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