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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의 시네 아고라] 소설 속의 영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7-18 20:07:53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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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다가 눈이 번쩍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문장의 아름다움일 수도, 인물의 저항적인 행동이나 인물을 지배하는 운명이 드러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독서 중 많은 경우는 책 속에 등장하는 영화들이 번뜩이는 순간이다.

최근에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의 소설 두 권을 읽다가 그 중 '사물들'의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60년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페렉의 소설은 남녀 주인공이 살아가는 1960년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서술한다. 프랑스의 많은 영화들이나 소설들이 68혁명을 전후한 시기의 세대를 즐겨 다뤘던 것처럼 '사물들' 역시 당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을 꼽자면, 2장의 초반부와 같은 지점이 될 것이다. 주인공인 젊은 커플에게 수준에 맞는 경제력이란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팔레-루아얄에서 생제르맹, 샹-드-마르스에서 에투알, 뤽상부르에서 몽파르나스, 생-루이 섬에서 마레, 테른에서 오페라, 마들렌에서 몽소 공원까지, 파리 전체가 그들에게는 영원한 유혹이었다."

아마, 이런저런 이유로 파리를 다녀간 이들이라면 이 지명들이 지니는 기본적인 의미를 쉽게 눈치 챌 것이다. 특정 지명 속에는 시대의 유행과 정신이 포함되어 있고,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페렉이 썼다면 대강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강남사거리에서 뱅뱅사거리까지, 교대를 지나 코엑스에서, 인사동 초입에서 북촌방향으로, 홍대와 신사동 가로수거리까지, 서울 전체가 그들에게는 영원한 유혹이었다."

'사물들'은 익명적인 공간이 특별함으로 다가오고, 그곳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젊은 커플의 욕망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 커플의 욕망은 '사물'을 따라 움직인다. 파리의 특정지역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은 엇비슷한 방식으로 호출된다. 스물넷 제롬과, 스물둘 실비 사이의 중요한 현대적 사물로 영화가 빠질 수는 없을 일이다.

"무엇보다 영화가 있었다. 나이로 보나 받은 교육으로 보나 그들은 영화 1세대에 속했다. 이들에게 영화는 예술 이상으로 하나의 진리였다. 그들은 늘 영화를 보았고 단번에 영화의 걸작과 신화를 꿰뚫어 알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화와 함께 성장했다고 느꼈으며, 그들 이전의 누구보다도 영화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1세대적 감수성을 지닌 이들은 과연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등장한 1990년대 초반 대학생 세대가 아닐까 싶다. 이들이 만든 신화 중 하나가 1990년대 중반에 개봉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삼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일이었다. 이 세대는 문화 갈증에 허덕이면서 영화의 걸작과 신화를 (꿰뚫은 것이 아니라) 숭배하였고, 이전의 누구보다도 영화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아무튼 소설을 조금 더 읽어보자.

"영화는 첫째로 꼽는 열정이었다. 거의 매일 밤 영화에 빠져들었다. 장면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우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끌어당기고, 매혹적이고, 사로잡는 면이 있으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영화광 세대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변형도 있다. "실비와 제롬, 그 친구들은 취향이 분명했다. 소위 진지하다는 영화를 특별히 경계했다."

소설 속에서 진지한 영화 중 경계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작품이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이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여전히 숭배의 대상인 레네의 영화를 두고 페렉은 쓰레기 같은 영화라고 적어놓는다. 마치 중요한 진술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술이야말로 때로는 레네의 1960년대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소설 속의 영화를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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