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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렌스 멜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 |
1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의 영화는 동시대적으로 수용되지는 않았다. 1990년대 중반 한국영화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지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상영은 대략 10년간의 격차가 있었다. 이 영화가 소개된 것은 1986년도 일이고, 국내 상영은 1995년도에야 새로운 영화 수용의 붐과 함께 가능해졌다.
오늘날 이 격차를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2000년대를 거치면서 영화의 상영 간극은 동시대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할리우드 영화를 중간과정 없이 직접 배급하기 시작하였다. 소위 직배사의 등장은 '할리우드와 동시에' 영화가 개봉되는 것을 가능케 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는 항상 늦게 도착하는 편지였다. 1970년대 비평가로 필명을 날린 하길종 감독의 글을 보면 격세지감을 보여주는 한국영화 문화의 현실을 개탄하는 대목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바꾼 것은 우연의 산물이다. 인터넷의 대중적 보급과 정보화 물결 속에서 '동시대성'은 자연스럽게 확보되기 시작했다. 동시대성이라는 분위기에 영화제도 분명한 한 몫을 거들었다.
영화제 마니아가 등장하게 되는 여러 가지 특성을 감안할 수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얼리어답터'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1주일 후면 개봉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1주일의 시차를 먼저 경험하기 위해 영화제의 티켓을 발권한다. 그런데, 이것은 일부의 문화적 사례이고, 영화제가 지니는 동시대성은 빠른 개봉은 물론이고, 동시대의 영화들을 대거 수용하는 시장을 만들어 낸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런 시장 형성은 영화를 사고 파는 바이어들에게는 물론이고, 관객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새롭다는 것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원한 박람회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점에서 21세에 들어서 동시대성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더 이상 진기한 체험이 아니었다. 많은 영화들의 정보는 개봉이 되기도 전에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동시대성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당분간 동시대성은 중요한 요건이 되겠지만 실제로 유럽영화의 경우에는 점점 더 시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올해 부산에서 선보일 유럽 거장들의 신작은 어느 정도의 시차를 두고 내년쯤 선보일 공산이 크다. 현재 규격화되게 적용되는 극장의 배급 상황과 더불어 여러 시차(경제적, 문화적, 배급적 등) 때문에 작은 영화들은 동시대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동시대성을 보증받는 영화들은 '대규모 영화'들 뿐이다. 종종 새로운 영화를 고르기 위해 해외 출장을 나가보면 한국에서는 이미 지나간 할리우드 영화들이 극장에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생각하기에 따라, 이것은 한국 소비자에 대한 할리우드의 존중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한국영화 문화는 '할리우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동시대성은 다양한 영화를 수용하는 동시대성이 아니라 메이저와의 긴밀한 순환고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불과했다.
지난 6월 말 독일 뮌헨에서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가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 영화를 한국에서 수입하기로 결정돼 있지 않았고, 영화제 차원에서 접근 중에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 달 전에 칸에서 처음 소개된 영화가 바로 개봉되는 상황이 부러웠다. 세간의 농담 중에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 영화문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평론가·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