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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영화의 핵심인 베를린 영화제가 열리는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극장 전경. |
한 해 백 편 이상의 장편 영화를 만드는 서구 국가에는 한국처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유사한 기관들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진위는 영화의 개발, 투자, 제작, 후반작업 지원, 배급, 홍보 뿐만 아니라 학술, 출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사업을 펼치지만 서유럽의 경우에는 분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 뮌헨의 '저먼 필름스'는 자국 영화 '프로모션'에 주력하는 기관이다. 영화의 직접적인 투자와 제작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저먼 필름스를 통해 올해 처음으로 독일영화에 관한 스크리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와 같은 프라이빗 스크리닝은 꽤 의미가 있는데 프로모션 기관들은 전세계의 영화제 중 몇 곳을 선정하여(대부분 다섯 개 안팎이다) 스크리닝할 작품을 모으고 영화를 보여준다. 부산이 세계 주요 영화산업국에서 프라이빗 스크리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프라이빗 스크리닝은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편수와 일정으로만 보자면 살인적이지만 짧은 기간 한 국가의 영화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필자가 모든 유럽영화를 다 섭렵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인상적인 영화 국가는 독일이었다. 베니스에 경쟁작으로 소개가 되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비롯해 최근 독일 영화는 다양한 합작형태 영화를 통해 새로운 분위기를 도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도 새로운 신인들을 대거 선보이는 등 세대교체의 바람도 일고 있다. 독일 영화의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작가적 감독들의 영화들이다. 독일 수도는 베를린이지만 이곳에서 대작들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요사이 유럽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요람은 파리가 아니라 베를린으로 인식될 정도이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작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다양한 영화들은 상당수가 베를린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치기어린 작품들도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다양한 영화들의 요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 한 가지 축은 역사극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 영화들의 배경은 20세기의 주요한 연대기를 재현해 낸다. 여전히 상당수의 역사극들이 히틀러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 지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러시아의 유대인이나 다른 지역의 독일인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비판 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관심사의 시기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전조가 있던 1980년대 말의 상황들이다. 아쉽게 상영을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서풍'(West Wind)이라는 영화는 서독에 간 동독의 소녀들이 조정 훈련을 하면서 서독의 문화를 접하게 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독일의 다큐멘터리나 극영화 중에는 아프카니스탄과 같은 세계의 비참함이 전개되는 현재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것은 독일의 여유로움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들의 지성이 부럽기도 했다.
상당수의 독일 영화는 여전히 관념적이다. 여기에는 죽음의 공포, 지루함의 일상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젊은 감독들의 영화는 자신들의 일상이 왜 이렇게 죽음의 공포에 빠져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 보고 있다. 이 과정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젊은 감독의 열정과 성찰이 어울리게 되는 경우 이 작품들은 독일의 새로움을 대변하는 주요한 목소리가 된다. 이러한 작품을 중심으로 향후 몇 년 뒤 독일 영화는 빔 벤더스와 헤어조그의 영화가 아니라 또 다른 뉴저먼 시네마의 물결을 일으킬 것처럼 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