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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광산구 인화학교 전경. 연합뉴스 |
'도가니'라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본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영화나 원작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도가니 현상'이라 불리는 상황을 읽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근원이 되는 '광주 인화학교'의 사건은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까지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폭파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억눌린 사람들의 분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왜 그것이 지금 폭발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인터넷 사이트와 커뮤니티에 넘쳐나는 글들은 물론이고, 언론은 재빠르게 '도가니 현상'을 만들어 냈다. 최근에 만난 지인들은 각종 언론에서 '도가니'에 관한 인터뷰를 청해왔다고 한다. 정치권 역시 '도가니 법'을 추진하겠다고 앞장을 선다. 좋은 뜻을 가진 법안을 세운다니 반가울 수 있는 일이겠지만 이 법안의 발의는 처음은 아니다. 2007년 8월 17대 국회를 통해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사회복지법인의 투명성과 공공성 제고를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이사를 선임하는 공익이사제를 도입하고, 시설운영위원회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아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을 추진했다. 당시 법안을 반대한 건 한나라당이었다.
지금은 당시 법안을 발의했던 민주당이 재발의를 준비 중이며, 한나라당 역시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한 편의 영화(문화)가 만들어 낸 진정한 힘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 것이었다면 좋기는 하겠지만 정치권은 발빠르게 영화 시사를 자청하였고, '도가니'는 말 그대로 정치적 관심사의 도가니가 되었다.
'도가니'는 일종의 정치적 간택이 된 사례처럼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서울 시장 재선거는 민심을 잡는 최대의 격전지라고 할 수 있다. 무상급식 문제로 시작된 시장 재선거의 핵심은 '복지담론'이다. '도가니'는 장애인의 인권 문제와 더불어 유아 성폭력과 같은 한국 사회의 예민한 문제가 들어있는 안성맞춤의 그릇이었다. 평소에도 동일한 관심을 가졌더라면 공지영의 원작이 연재되었거나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도가니 법안'은 완성되어야 했다. 책이 출간된 것은 2009년 6월의 일이다. 혹자는 3년이나 지나서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문학과 영상의 힘의 차이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그처럼 강력한 매체라고 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의 유병선 논설위원은 "3년 전 11월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가 인터넷에 연재되기 시작했다"며 3년 사이의 시민변화를 주장한다. "3년 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월가의 시위는 금융의 탐욕 탓이고, 오바마의 전사 변신은 재선을 위한 포장이며, '도가니 현상'은 영화의 힘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시민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처럼 '제 기능을 상실한 민주주의'가 시민의 정치적 열정에 불을 지피고 있다. 요컨대 세상이 바뀐 것이다. 도가니 현상도 요약하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필자는 3년 동안 시민의 공분이 더 커질 수는 있는 일이겠지만 위의 언급처럼 급진적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보다는 벤야민이 말한 '정치의 예술화'에 가깝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논문 말미에 프롤레타리아와 대중들이 함께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양자 간의 구별이 어려울 거라는 예고를 한다. 이 과정에서 파시즘의 정치는 프롤레타리아의 소유관계는 변화시키지 않은 채 표현의 욕구만 허용해 주는 것이 특징이라 설명한다. 다시 말해, 실제적인 분노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그것을 분출할 창구를 만드는 것, 소리 높여 외치는 선동의 자극이 바로 '정치의 예술화'라고 지적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뜨거운 '도가니' 현상보다는 냉철하게 말하는 '도가니'를 보고 싶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