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 동안 인간 사회는 테크놀로지에 관한 풍요로움을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세탁기라는 발명품 역시 위대한 테크놀로지 중 하나였고, 21세기의 초입인 현재에는 누구나 테크놀로지를 들고 다닌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2015년에는 교실에서 칠판이 사라질 거라고 한다. 교과서도 물론 사라질 것이다. 아이들은 태블릿 PC에 교과서를 넣고 다니고, 수업 시간에는 PC 위에 메모를 하면서 이미지 위에 자신의 문자 이미지를 기록할 것이다. EBS에 등장하는 공부의 왕들처럼, 이제 노트 정리는 컴퓨터 위에 잘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 된다. 그것은 기존 공부 왕들의 습성과 패턴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면서 찬성과 반대가 교차하는 입장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테크놀로지가 일상화 되면 될수록 반대의 목소리보다는 기본적으로 찬동하는 입장들이 강하다. 휴머니즘을 외치는 많은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다음과 같다. 테크놀로지의 사용에 있어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들은 기계장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류는 우리의 도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테크놀로지를 제대로 활용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유용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가 있다.
꽤 그럴듯 한 말처럼 들리지만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연구하는 수많은 이들은 이 답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반문한다. 존 그레이와 같은 이론가들은 "기술 진보는 딱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 두었는데, 그건 바로 인간 본성의 취약함이라는 문제다.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기능을 확장하고, 바꿀 수가 있지만 인간의 본성인 '취약함'이라는 것을 결코 수정할 수 없는 것이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인간의 취약한 본성은 테크놀로지를 나쁜 곳에 활용하기 마련이다. 지난 20세기에 아우슈비츠를 가능케 했던 것은 '기차'라는 근대의 새로운 테크놀로지 덕분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를 통해 유대인들이 기차를 타고 수용소로 이동하는 장면을 본다. 무심코 바라보는 비극적인 순간의 장면에는 반드시 '기차'라는 테크놀로지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애절한 순간, 인간적 감정을 흔드는 순간이 등장하기라도 하지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점점 더 메마르게 연출되고 있으며, 그러한 순간에 나타난다. 이라크와 중동 지역을 담은 여러 다큐멘터리나 뉴스 화면을 보고 있으면 폭격은 더 이상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꽤 메마르게 죽음의 순간들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교신하는 무전기의 목소리를 통해서이다. 오늘날 우리가 들고 다니는 수많은 휴대폰은 포화 속에서도, 일상 속에서도 메마르게 죽음의 순간을 전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알게 되는 문자를 받거나 뉴스 기사를 통해 그의 죽음이 메마르게 전해진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한 날 세계 최대의 뉴스는 스티븐 잡스의 죽음이었다. 알다시피, 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만들어 낸 전도사였다.
최근 그의 새로운 자서전이 공개되면서 여러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자서전에 따르면, 췌장암으로 투병을 하던 잡스는 민간요법은 물론이고 인터넷에 떠도는 방식을 도입하거나 심령술까지도 치료를 위해 사용해 보았다는 것이다. 이 위대한 테크놀로지의 전도사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죽음을 앞둔 한 인간에게 의료 테크놀로지가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그것은 테크놀로지의 미래의 공백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킨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취약한 존재다. 그 약함은 테크놀로지를 취하는 순간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