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금융계의 탐욕과 소득 불평등에 저항하는 반 월스트리트 시위 모습. |
최근 미국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다. 이 시위는 한국의 촛불집회의 경우처럼 구체적인 지도자나 조직없이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일부 젊은이들의 시위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무직자들이 월스트리에 나가 현재의 구조적 문제를 항변하고, 자신들의 견해를 주장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 시위에 대해 여배우 수잔 서랜든,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 '가십걸'의 펜 바드글리, 힙합 가수 탈립 콸리 등이 이들의 상징적 본거지인 뉴욕 주코티 공원을 찾아 지지 발언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달 15일에는 '우리는 99%다'라는 문구와 함께 뉴욕의 타임스퀘어까지 행진을 했다. 문구의 '99%'라는 의미는 월스트리트의 사람들이 1%라면, 우리는 이를 위해 세금을 내는 99%라는 차별과 불평등에 관한 강력한 발언에 해당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월스트리트 점령이 그다지 상세하게 다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새로운 지지자들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느슨한 연대를 통해 급변하는 정세를 만들어 왔다. 최근에 국내 기사의 상당수는 폭력 시위로 변질된 듯 보이는 사태를 다루고 있지만 다른 루트를 통해 현지 언론이나 입장을 살펴보면 한국 언론의 정보 전달력이 얼마나 폐쇄적인 지를 실감나게 한다.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역시 현재의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불만을 지니고 있으며, 월스트리트 점령은 계기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에 대해 가장 강력한 지지 발언을 한 이가 영화를 사랑하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다. 그는 이번 시위의 상징이 된 인간 마이크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금기는 깨졌다. 지금 우리는 가능한 가장 좋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대안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이 영리한 철학자는 단순히 월스트리트를 향해 말을 날리지 않았다. 그가 먼저 보자고 했던 것은 구조의 문제이다.
또한,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순응주의적이고 소극적인 윤리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우리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항의를 희석시키는 거짓 동료의 잘못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카페인 없는 커피를, 알콜 없는 맥주를, 지방 없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그들은 우리를 무해한 도덕적 항의자들로 만들려 하고 있다." 지젝이 즐겨쓰는 수사학 중의 하나인 '카페인 없는 커피'는 정신적으로는 커피라는 쾌락을 누리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인 카페인은 제거된 우리 시대의 향유방식을 의미한다.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카페인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우리는 건강(윤리)을 이유로 내세워 카페인(본질)을 제거한 채 미소를 지으며 커피의 분위기만을 즐긴다.
지젝은 이러한 태도의 타파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번 연설을 통해서도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겨우 콜라 캔을 재활용하거나, 몇 십 달러를 자선기금으로 내거나, '스타벅스' 카푸치노를 사면서 수익의 1%가 제3세계의 어려운 이들에게 간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는 세계를 거부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두 편의 월스트리트를 다룬 영화를 통해 미국사회 부의 상징인 월가가 어떤 이면을 지니고 있는가를 드라마틱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그다지 평가받지 못한 이유는 드라마틱한 월가 인물들의 내용과는 다르게 저 멀리서 빈부의 격차를 실감해야 하는 사람들을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점 그들만의 리그로 변하는 현실에 대해 현재 미국 사회는 동요하고 있다. 아마도, 인간 사회는 그들만의 리그를 과거처럼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참여의 권리 주장일 수밖에 없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