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세탁기

도로나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려 있지 않은 아프리카 오지의 자동차와 노트북.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도 이럴 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제3세계의 지역적 조건에 맞는 기술, 이른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 필요하다. 해당 지역에서 산출된 원재료로 그 지역에서 소비되는 제품을 만들어 지역 환경에 적합한 기술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부경대 문화융합연구소(소장 손동주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연구소 개소 기념으로 지난 4일 오후 대연캠퍼스 장보고관에서 적정기술을 활용한 '인간·자동차 인터페이스 융합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부경대는 동북아시아문화·역사문화·해양문화·아시아스토리텔링연구소 등 4개 연구소를 통합해 문화융합연구소를 만들었다.

박성조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는 '자동차와 인문학'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인문학을 배제하고 기계적 시각에서만 접근하지만 독일에서는 자동차를 만들 때 인문학적 조사를 먼저 한 다음 공학적 접근을 시도한다"며 "이런 차이가 두 나라 자동차산업의 질적 차이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손일선 오산대 교수는 '적정기술과 자동차'에서 적정기술의 사례를 소개했다. 적정기술의 시초는 '라이프 스트로우'(life straw). 개발도상국 주민이나 여행자를 위해 개발된 휴대용 정수기다. 2달러의 가격에 1년간 필터 교환 없이 700ℓ의 더러운 물을 깨끗한 식수로 정수해준다. 라두 라두나 미국 MIT 공대 학생이 2005년 MIT 아이디어 경연대회에서 전기 없이 세탁이 가능한 '자전거 세탁기'를 개발했다. 손동주 소장은 "연구소 설립 취지에 맞춰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으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연구를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적정기술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가 자신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시한 개념. 가난한 나라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임을 강조한다. 거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하지 않으며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오상준 기자 최정헌 허수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