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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라도에게 심문 받는 예수님. |
신앙은 절대자인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攝理)와 주권(主權)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의 결과다. 그런 믿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내 삶의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그 일도, 그 자리에 내가 있는 것도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살면 그런 사람은 '사는 인생', '삶'이 된다. 그런 인생은 남도 살리는 인생, 즉 '살림살이'가 된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환경과 남에 의해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지는(be lived) 삶', 더 나아가 '사라지는(fade out) 삶'을 살게 된다.
지난 주일은 기독교 최대 명절인 부활절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온 인류는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은혜를 입었고, 예수님의 부활로 죄를 용서받은 인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을 얻게 되었다. 오늘 '성경 속 인물'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빌라도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당시 예루살렘을 책임지던 로마 총독이었다. 빌라도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들에 의해 부화뇌동한 군중에게 끌려온 예수님을 심문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형을 내릴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신약성경 요한복음 18~19장).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교활하고 집요했다. 백성은 막무가내였다. 무조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것이다. 빌라도는 예루살렘에 소요가 일어나 자신의 출세에 지장이 생길 것을 염려하여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서 처형하도록 허락한다. 빌라도는 그 결정이 얼마나 엄청나고 무서운 결정인지를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날의 결정은 인간을 사랑해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죽이는 일이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다시 인류의 왕으로 오실 때까지 모든 기독교인이 신앙으로 고백하는 사도신경에서 영원히 저주받는 이름이 되고 말았다.
빌라도는 왜 끝까지 예수님을 살리지 못했을까. 예루살렘 총독이라는 자리가 그때를 위해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힘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될 때 권력, 옮음을 지키는 힘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힘은 남을 헤치는 폭력이 된다.
새로운 국회의원들이 뽑혔다. 말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선택이다.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세가 없으므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친다(신약성경 로마서 13장 1~3절). 정치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정당한 방법으로 부여된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선거를 통해 권력을 일시적으로 사용하도록 허락받은 정치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힘을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다. 그런 사람이 선한 역사를 만든다.
사족. 예수 사건의 전말을 로마 황제에게 보고한 '빌라도의 보고서'가 먼지 속에 묻혀 있다 몇 년 전에 로마 박물관에서 발견됐다. 서점에 나와 있다.
대연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