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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을 위해 웃음을 보이나 쓸쓸한 내면을
간직한 광대. |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약 3년간의 갈릴래아 활동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여 자기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을 맞는다. 그는 이 한 주간을 통하여 유대교를 철저하게 와해시키고 자신을 메시아로 한 그리스도교를 홀연히 세우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이는 스스로 유다인인 자신을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떼어내는 작업이다.
이미 예언된 메시아처럼 나귀를 타고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는 즉시 성전정화 사건을 통하여 백성의 원로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를 소재로 삼아 백성의 지도급 인사들을 크게 나무라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그들이 받게 될 불행을 선언한다.
이 비유들 안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모세와 엘리야를 통한 구약(舊約)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통한 신약(新約)으로 맺어진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말한다. 애당초 하늘 나라의 입장권을 가진 구약의 백성들이 자격이 없음을 선언하고 그것을 빼앗아 신약의 백성들에게 줘버리는 하느님의 처분이 비유들의 결론이다.
예수는 당시 율법학자와 대사제들이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며 예언을 관리하는 막중한 권한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존경을 표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이 말과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격렬한 비난을 퍼붓고, 이를 근거로 화를 입을 것을 예언하였다. 한 마디로 그들을 '위선자'라 하였다.
위선자는 원래 연극용어로서 배우들을 지칭한다. 배우들은 자신의 실존을 철저히 가면 뒤에 숨기고 각본과 배역에 따라 연기한다.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더라도 배역이 주어지면 각본에 따라 그렇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런 행위는 결국 관객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대사제들과 율사들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 예수의 결론이다. 그들이 율법의 세칙들은 문구대로 지키면서 그 기본정신을 저버린 까닭이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며, 무거운 짐을 백성에게만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달고 옷단에도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니며, 잔치에서 맨 윗자리와 회당에서 제일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거리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하며, 사람들로부터 스승이다, 지도자다 하는 말을 즐겨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진정한 스승과 지도자는 그리스도 당신 한 분뿐이며 믿는 이들은 모두 한 형제자매임을 가르친다. 예수만이 가르치시는 선생이며 제자와 신도들은 모두 배우는 학생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도 예수의 가르침을 계속 전해야 하고 다시금 가르쳐야 하는 사도직을 수행해야 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그들 또한 스승이신 예수 앞에 늘 학생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는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마태 23,11-12)고 했다.
남을 가르치려는 자는 필히 이 역설의 복음을 지워지지 않는 글로 자신의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거나 남 앞에 자주 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선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고, 말이 앞서면 행동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지도자들 또한 교회의 기본정신을 망각하고 신도들을 하느님께 인도하기보다 그들을 자기에게 속한 사람으로 만들려거나 세상의 구원을 위한 제단 앞에서 제단 위의 제물에 더 관심을 둔다면 이는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천주교 몰운대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