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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품안에 안긴 탕자. |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인생은 은혜(恩惠)'라는 사실이다. 햇볕, 공기, 물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인생이 자기 노력으로, 자기 공(功)으로 살아지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을 자기 공로(功勞)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 차이가 있다. 전자는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인생은 한마디로 고달프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야박하다. 정이 없다. 그래서 외롭다. 반면에 후자는 모든 것에 감사한다. 베풀 줄 알고, 겸손하다. 그래서 늘 누군가와 함께 한다. 절대 외롭지 않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두 형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큰 아들은 신실했고 작은 아들은 제멋대로였다. 하루는 작은 아들이 자기 인생을 살겠다고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당겨 달란다. 기어이 작은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챙겨 나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 재산을 다 날리고 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탕자(蕩子)라고 불렀다. 큰 아들은 달랐다. 아버지의 뜻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맡겨진 일에 충실했다. 재산을 탕진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위해 부지런히 일했다. 사람들은 그를 효자라고 칭찬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거의 굶어죽을 상황에 처해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은 그 깨달음을 누가복음 15장 17절에 이렇게 전하고 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일군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 집에는 종들조차 풍족히 먹고 사는데 자기는 지금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아들은 즉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염치 없지만 아버지에게 자기를 품꾼으로 써 달라고 하면 그 정도는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단 하룻밤도 깊은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버지의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저 멀리서 작은 아들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몰골은 영락없는 거지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아들을 알아보았다.
작은 아들이 말한다.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누가복음 15장 21절) 그런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그저 집에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아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 잔치를 벌인다. 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큰 아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심술이 나서 아버지에게 따진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삼켜버린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누가복음 15장 29, 30절) 아버지는 안타까워 하며 간곡히 이른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누가복음 15장 31, 32절)
같이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큰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는 동생처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동생을 비난하고 정죄했다. 그러나 큰 아들이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는 점이다. 작은 아들은 한 때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큰 아들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만큼 했다'는 생각에 여전히 은혜가 뭔지 몰랐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은혜로 대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점이다. 그는 집안의 탕자였다.
대연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