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에는 UN기념공원이 있다. 현충일뿐 아니라 현장학습부터 학교 사생대회까지, 심지어는 중학교 졸업사진 촬영 장소마저 UN묘지와 그 옆의 평화공원이었을 정도로 내게는 굉장히 친숙한 곳이다. 하지만 기억을 돌이켜보면 실제로 UN묘지에 들어가서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연못 위를 평화롭게 떠다니는 오리를 신기해하며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 다니기만 했을 뿐이었다.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뜨거운 어느 여름날,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분수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평화공원을 찾아갔다. 상쾌하게 물을 뿜어내는 분수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물놀이를 하다 보니 얼떨결에 평화공원에서 조각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까지 뛰어나와 버렸다. 물에 젖은 옷을 짜내고 술래잡기 탓에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쫓고 있던 친구의 이름을 소리쳐 부른 찰나였다. 별안간 아저씨 한 분께서 우리 쪽으로 다가와 말씀하셨다.
"조용히 좀 할 수 없겠니? 지금 너희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딘지는 알만한 나이쯤은 되지 않았어?"
아저씨께서는 경비 옷을 입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꾸짖음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우리의 왼쪽에 커다란 철문이 있었다. 우리가 달려나와 놀고 있었던 곳이 UN묘지 입구였던 것이다. 그 입구를 지키시던 경비 아저씨께서는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으신 분들이 이 땅 밑에 잠들어계시니 조금만 조용히 하자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 순간 누군가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내리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의 진정한 의미가 파도치듯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내가 여태까지 생각 없이 뛰어놀고, 예쁜 꽃들의 자태에만 감탄하곤 했던 그곳은 1950년부터 시작된 비극에서 희생되었던 수많은 영혼이 흙 밑에서 숨 쉬고 있는 장소였다. 내가 밟고 있는 그 흙은 몇십 년 전 어느 군인의 군화 속에서 쏟아져 나왔던 흙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목숨의 연명을 위한 땅굴을 파며 퍼 나르던 흙일 수도 있을 것이며, 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무덤 속으로 떨어뜨리던 눈물 섞인 한 덩이의 흙일 수도 있는 것이다.
순간, 너무나도 부끄러워졌다. 학교에서 또 집에서 항상 듣는 순국선열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일까? 경비 아저씨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를 드리는 동시에 나는 여기에 잠들어계시는 수많은 분께도 마음속으로 사과드렸다. 밟고 있는 흙 속에서 그분들의 숨결이 새어나오는 것 같아 물에 젖어 모래알이 덕지덕지 붙은 신발을 신고 있는 내 발이 창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평소 주위의 많은 곳에서 우리 민족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고는 한다. 학교에서 매년 빠지지 않고 실시하는 호국보훈 교육부터 시작해서, '포화 속으로', '고지전' 등의 영화까지. 나 또한 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항상 들었고, 두 개의 영화도 모두 보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배운 것들을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의 그 여름날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의 땅 또한 그때 우리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주신 분들 덕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곤 한다. 전쟁 영화를 보면서도 남주인공의 잘생긴 얼굴이 아닌, 그 얼굴에 묻은 흙을 바라보며 저 흙이 세월을 건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운동화에 묻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학교에서 호국보훈 영상을 보여주면 가족의 시체와 군모 위에 흙을 뿌려야 했던 유가족들의 눈물을 나도 함께 흘리게 되었다.
진정한 애국심은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가까이에 있다. 당장 내가 올라서 있는 흙이 그 당시 많은 이가 흘렸던 피와 눈물이 섞인,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의 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그 흙에서 나오는 숨결은 약 60년의 세월 동안 더는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지켜보는 수많은 순국선열의 기쁜 꿈이 담긴 숨결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는다면, 바로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애국은 시작되는 것이다.
데레사여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