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4월 초순, "신 동무! 일주일 후에 동독 함흥시 재건단 통역으로 함흥에 가게 됐으니 준비하시오"라는 동독 주재 북한대사관의 전화가 있었다. 나는 6·25전쟁 때인 1952년 제1차 동독 국비유학생으로 파독되어 라이프치히에서 반 년간 독일어를 배우고 1953년부터 드레스덴 공대 건축과 예과를 끝마쳤으니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던 때였다. (…중략…) 전쟁이 끝난 직후라 미국 B29의 혹독한 폭격으로 함흥시는 근 95퍼센트 파괴되어 있었던 터라 독일 기술진의 숙소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잠자리에 필요한 침대 매트리스를 볏짚으로 만드느라 고생하셨던 함흥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어제의 일같이 떠오른다.
신동삼 컬렉션-독일인이 본 전후 복구기의 북한/신동삼 글·사진/눈빛/2만9000원
나지막한 기와집이 촘촘히 들어선 마을에서 사람들이 일상을 보낸다. 언뜻 전쟁이 휩쓸고 간 황폐한 마을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진 속 거리에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찾아보기 어렵고 아이들은 무표정이다.
1950년 6·25전쟁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꿨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가족이 흩어졌고, 도시가 부서졌고, 사람들은 피폐해 졌다. 그렇게 60년이 흘렀다. 신동삼 컬렉션-독일인이 본 전후 복구기의 북한은 1953년 6·25전쟁 정전협정 이후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북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집이다. 당시 독일 유학생 신분이었던 저자는 독일에서 북한 함흥시에 파견한 동독재건단 신분으로 북한을 찾았다. 그곳에서 전쟁의 폐허가 되어 버린 북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책에는 전쟁 이후 메마른 들판에 공장과 집 몇 채만 덩그러니 서 있는 마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아낙네, 해수욕장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소년들, 재건 작업에 동원된 청년, 북한의 산과 강, 바다까지 1950년대 북한의 모습이 고루 담겨 있다.
저자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한 이후 지금까지 독일에 살고 있다. 하지만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민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직접 동독재건단 파견 당시 사진 자료 3000장을 모아 책을 펴냈다. 민족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회한이 사진에 묻어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