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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21> 산동네

피란민·도시 빈민들의 삶터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세계적 어울림의 공간 명성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2-25 19:11:05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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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로 올라가는 이바구길을 걷다가 옛 백제병원을 지나면 초량초등학교 담장에 설치된 '이바구갤러리'를 만난다. 피란민들의 팍팍했던 생활만큼이나 가파른 길이지만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변모하는 이곳에서 부산의 어제와 오늘의 시공간이 역설적으로 교차한다. 국제신문DB
- 안창마을·물만골 등 도시재생 사업 진행
- 주민에 실질적 도움
- 르네상스 프로젝트 호평
- 경관 개선·관광지화보다 이웃 공생에 힘 쏟아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산'이라는 도시를 떠올렸을 때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자갈치 등 바다나 항구와 관련된 장소를 연상한다. 하지만 부산에는 부산 사람의 애환과 삶이 만들어낸 독특한 장소가 있다. 고국, 피란지, 일자리를 찾아 몰려온 귀환동포, 피란민, 노동자의 불안한 삶을 품어준 '산동네'가 바로 그곳이다. 산동네는 부산의 형성과 역사를 증명하는 상징적 공간이자, 도시의 공간구조 속에서 배제된 약자들의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부산의 역사, 부산 사람의 삶이 공간의 층과 시간의 결을 따라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형성, 전쟁으로 확장된 삶터

개항 이후 대일무역의 확대와 공업의 성장, 매축공사 등으로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부산의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하지만 낮은 임금과 불안한 고용구조 탓에 빈민층은 늘어만 갔다. 일본인들이 체계적인 도시계획으로 자기 거주지를 근대화할 때 빈곤한 조선인들은 수도, 변소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일자리 인근의 빈터나 개천가에 움막, 판잣집 등을 짓고 살았다. 그곳도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산자락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산동네가 도시 빈민들의 삶의 터전이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해방, 전쟁으로 밀려든 귀환동포, 피란민들로 부산은 또다시 큰 변혁을 겪게 되었다. 수용소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한 평이라도 빈터만 있으면 집을 지었고 점차 이들의 주거지는 산으로 올라갔다. 산비탈을 가득 메운 판잣집은 해방과 피란 시절 서민들의 대표적인 주거라 할 수 있다. 용두산(1951, 1954), 국제시장(1953), 부산역(1953) 등 크고 작은 화재도 빈번하였다. 이들 화재 대부분은 판잣집에서 시작되었는데 가마니, 나무판자 등의 가연성 재료와 촛불이 주원인이었다. 당시 '났다 하면 불'이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였다.

이후 많은 피란민이 고향으로 또는 타 지역으로 이동했지만, 산동네는 사라지지 않았다. 철거, 화재 등으로 살 곳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도시 부산으로 몰려든 노동자들이 산동네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정책이 몰아치면서 도시환경 개선과 미관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산동네는 무허가 불법 주거지로, 주민들은 불법거주자가 되어 철거와 강제이주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주민들은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고, 철거되면 짓고 철거되면 또 짓는 악순환은 1980년대 후반까지 계속 반복되었다.

1964년 10월 산복도로가 개통되었다. 산동네를 가로지르며 해발 60~100m 높이의 산 중턱에 만들어진 산복도로는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대로 된 도로가 없어 불편했을 당시 원조라 할 수 있는 망양로는 다른 곳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발판이었으며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남부민동, 가야, 주례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점차 판잣집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슬레이트와 블록 등으로 재료만 바뀐 비좁은 단층주택,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연립주택과 저층 아파트 차지가 되어 버렸다. 도로, 화장실, 주차장 등 기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무계획적으로 판잣집 자리에 그대로 집이 들어서 좁은 골목길, 가파른 계단, 불편한 공동화장실은 여전하다. 부족한 주차공간 때문에 산복도로 주변에는 아래 건물 옥상을 활용한 옥상주차장도 생겼다.

■1990년대부터 분 재개발 바람과 재생사업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철거 위주의 재개발이 한창이던 1990년대 산동네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추진위원회에다 조합까지 설립된 산동네가 있긴 했지만, 제대로 추진된 곳은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재개발'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도시재생'이 새로운 도시정책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산동네를 대상으로 다양한 재생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안창마을의 '안창고'(2007), 물만골의 'Art in City'(2007), 돌산마을의 '따뜻한 사람들의 벽화이야기'(2008)와 '돌산공원 가꾸기'(2011), 감천문화마을의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2009)와 '미로미로 골목길'(2010) 등의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들 사업은 무엇보다 산동네의 주거환경 미화에 도움이 되고 산동네를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산동네를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진 벽화마을로 획일화하고 관광지로 만드는 것에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그것마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흉물스럽게 변한 곳도 있다.

산복도로와 산동네를 재생하기 위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2010년부터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기존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하려고 감천문화마을의 감내카페와 감내맛집, 초량 산복도로의 천지빼까리 카페, 까꼬막 게스트하우스, 골목점빵 등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는 점이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하는 새로운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원도심 고지대를 중심으로 보존과 개발을 고려한 '휴먼타운' 사업이 계획 중이다. 최근 서구 아미동 까치고개 일대가 첫 대상지로 선정되었다. 살던 주민 대부분을 바깥으로 쫓아내는 '뉴타운'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의 삶터에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휴먼을 위한 타운'이 되길 바란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공생에 포커스를

이제 산동네는 열린 공간, 어울림의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특히 문화, 스토리 중심의 재생사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산동네와 산복도로는 전국적 나아가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감천문화마을은 최근 카타르 민영 위성TV 방송국인 알자지라, 미국 CNN방송 그리고 프랑스 대표 일간지인 '르 몽드'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지난달에 열렸던 '대한민국 지역희망박람회'에서 지역발전대상, '지역공동체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울러 지리 교과서에 산복도로와 감천문화마을이 소개되고 올해 대학수능시험에 등장하기도 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산동네의 외형이나 경관의 개선만을 중시한다거나 산동네를 관광지화, 상품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자체장의 생색내기용 성과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산동네의 장소성과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여 보존과 개발이 공존하는 공간, 이웃과 공동체가 함께 공생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길 기대한다.


# 비석·철탑마을 등 형성 시기·거주민 제각각

   
부산 연제구 연산동 황령산 자락의 물만골 마을.
부산에는 산동네가 많다. 하지만 형성된 시기도, 모여든 주민들도 제각각이며 장소의 특징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서구 아미동 산19번지의 비석마을과 사하구 감천동 문화마을은 피란 시절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었던 아미동은 피란민들과 이주민들이 묘 터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형성되었다. 감천문화마을은 1950년대 중반 전국 각지에서 피란 온 태극도 신자들이 교주를 중심으로 종교공동체를 만든 곳으로, '태극도마을'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끼리 '모든 길은 통해야 한다', '뒷집의 조망권을 막지 말자' 등의 원칙을 세워 지켜왔기 때문에 사통팔달의 길과 계단식 주택 등 질서정연하고 통일성 있는 경관을 이룬다.

동구 범일4동과 부산진구 범천2동에 걸쳐 있는 '도심 속 오지' 안창마을은 신발산업이 번창하던 1970년대 김해, 양산, 전라도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형성되었다.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은 도시 계획상 공원지구로 지정된 곳이지만, 1960, 70년대 철거정책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여 만든 곳이다. 재개발에 반대하며 주민들이 돈을 모아 마을 일대 3만2000여 평의 부지를 공동으로 매입하였다.

   
남구 돌산마을과 철탑마을은 비교적 늦게 형성된 산동네다. 1980년대 부동산 투기과열, 주택과 전세 가격 폭등으로 살 곳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 공동묘지가 있었던 문현1동 돌산마을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사람이 살긴 했지만, 마을이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무덤 대부분은 이장되었고 현재 80여 기가 남아있다. 철탑마을은 대연동과 우암동 경계의 산비탈에 만들어진 마을로서 '대연-우암 주거공동체'로 불린다. 당시 국방부, 산림청, 성창합판기업 부지였으나 1990년대 부산외국어대학교가 매입하면서 철거를 요구하였고 주민들은 현재까지 철거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공윤경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공학박사

※공동기획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국제신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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