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 게르니카 떠나 한국행
- 33년간 경남 산청 성심원서
- 소외 당하는 한센병 환자
- 잡일까지 챙기는 '가족'

- 500번이 넘는 죽음 겪으며
- 염습 등 장례절차도 도맡아
- 정작 부모님 임종 못 본 그
- "새로운 가족 있어 후회 없어"

경남 산청 성심원에는 파란 눈의 천사가 있다. 스페인 게르니카 출신의 유의배(67·Uribe, Luis Maria) 신부다. 유 신부는 1980년부터 33년 동안 성심원에서 한센인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고향과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오롯이 바쳤다.

아프리카 남수단의 한센인을 위해 헌신했던 고 이태석 신부와 닮은 유 신부가 제3회 이태석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3일 오후 5시 부산시청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사회에서 소외당한 대한민국의 한센인을 위한 노력이 인정받았다. 수상 소식을 들은 유 신부는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부끄러울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상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유 신부는 자신의 의지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5~6세 때 들었던 한국전쟁 이야기를 줄곧 기억하고 있었다. 폐허가 된 한국의 모습에서 스페인내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던 자신의 고향 게르니카를 떠올렸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인 그는 적극적으로 한국행을 요청했다. 수도회는 그를 동료들과 함께 한국으로 보냈다. 동료들은 한국 곳곳의 수도원으로 흩어졌다. 그는 산청 성심원에 부임했다. 그것이 한국과의 첫 만남이었다.

	유의배 신부가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한센병 환자를 보살피고 있다. 환자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사)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 제공

그 이후 그는 줄곧 성심원에서 생활했다. 그는 성심원의 멀티 플레이어다. 환자의 운전기사 역할부터 아이의 진로 상담까지 맡고 있다. 1997년부터는 사망한 이들의 염습, 입관 등 장례 절차를 도맡았다. 한센병 때문에 사회에서 버림받은 환자에게는 유 신부가 유일한 친구이자 멘토다. 환자와 거리낌 없이 볼을 비비고 농담을 던지면서 그들을 챙긴다.

그는 환자들이 가족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자녀, 부모, 부인, 남편과 연락이 끊어진 채 홀로 외로워하는 환자들의 모습은 너무도 안타깝다. 손자, 손녀가 보고 싶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혈육의 연마저 끊어진 환자들에게 유 신부는 그만큼 더 절실한 사람이다.

환자들에게 내색하지 않지만, 사실은 그도 무척이나 고향이 그립다. 오랜 타향살이에 고향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만리 밖 타향에서 500번이 넘는 죽음을 겪었지만, 정작 부모님의 임종은 단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환자를 보살피느라 부친의 장례식에만 뒤늦게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성심원 환자들이 그의 새로운 가족이기 때문이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요. 전혀 힘들지 않아요. 힘든 건 제가 아니라 한센인들이죠"라고 답했다.

그는 '순응'을 강조했다. 종교에 귀의한 몸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유 신부는 "인생은요. 선택하는 것이 아니에요. 인생은 '순응'하는 겁니다. 수도회가 저를 내일이라도 딴 곳으로 보내면 저는 그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이 인생에 '순응'하는 것이죠. 그것이 제 사명이에요" 라고 말했다.

# 한센병

한때 나병 등으로 불렸다. 피부, 점막 등에 염증을 일으키며, 환자는 해당 부위 감각을 잃거나 과민하게 감각을 느끼게 되는 전염병이다. 치료받지 않은 환자에게서 배출된 나균에 오랫동안 접촉한 경우에 발병한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자연저항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환자도 약을 먹으면 몸속 균의 전염력이 99.99% 사멸한다. 

# 이태석 신부상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가 영면한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 (사)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가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나눔을 이어오는 봉사자들을 발굴하여 격려, 지원하는 의미에서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