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한 외모와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실력 덕분에 20~30대 여성 팬의 발길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였던 꽃미남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어느덧 서른 살이 됐다.
앳된 얼굴에 웃을 때 움푹 패는 보조개만 보면 지금도 영락없는 미소년인데 11~23일 전국 투어를 앞두고 10일 낮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서른 살이라는 나이를 꽤 의식하는 듯했다.
"이젠 안경을 안 쓰면 잘 안 보여요. 흰머리가 많아져서 염색도 해야 할 것 같고요. 살면서 느끼고 깨닫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생각이 많아지니 잠을 못 자고, 잠을 못 자니 또 생각이 더 많아지네요." (웃음)
생각이 많아지니 지금껏 잘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고 솔직한 성격 탓에 자주 손해를 봤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지난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편파판정을 이유로 3위 수상을 거부해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도 돌이켜보니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한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나이 들어 생각하니 그 여파가 꽤 컸던 것 같아요. 그 일로 아주 많은 부분에서 손해를 본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선입견을 바꾸기는 어려우니까요. 제가 하지 않은 일을 누군가 지어내 얘기해도 사람들은 '임동혁이면 그러고도 남지'라고 얘기하고 어느새 사실처럼 돼버리더라고요."
서른 살이 된 임동혁은 이렇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변화를 맞았지만,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오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쇼팽이나 라벨 등 주로 낭만적인 곡을 연주해온 그가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가장 임동혁스럽지 않은 곡을 잘 연주하고 싶다"며 예상치 못한 레퍼토리를 꺼내 든 것.
이번 공연에서 그는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 바흐의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BWV 564,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을 연주한다.
"음악적 변화가 있었다기보다 생각의 변화가 있었어요. 제가 큰 음악적 변화를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게 맞을 것 같네요. 그동안 잘하는 것, 편한 것만 하려 했는데'그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고 갑자기 욕심이 생겼죠. 제가 잘 못 치는 곡 중에서 좋은 곡들이 많거든요."
특히 베토벤을 레퍼토리에 포함한 것은 그동안 무대에서 베토벤을 연주한 적이 거의 없는 그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월광'은 무대 위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해낼 수 있다는 걸 나 자신이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넣었어요. 그동안 무대에 올랐을 때 연주를 망치는 확률이 높았던 게 주로 베토벤이거든요."
그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베토벤은 이성을 많이 요구하는 베토벤인데 무대 위에서 계속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임동혁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은 어떤 느낌일까.
"베토벤의 '월광'을 생각하면 물 위에 비치는 달이 떠올라요. 뭔가를 표현하느라 멈춰 서지 않고 계속 흘러가면 좋겠습니다. 제 원래 스타일과는 다르게 잘 연주하고 싶습니다."
영재 피아니스트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성숙한 연주자로 거듭나는 기로에 선 임동혁의 이번 음악적 도전의 끝은 어디일까.
"자기가 하는 음악을 믿지 못하게 될 때 가장 큰 슬럼프가 찾아오는데 저는 제가 하는 음악을 믿어요. 연주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고요. 최근 선생님(피아니스트엠마누엘 엑스)과 대화를 나눴는데 지금 이대로만 계속 연주하면 전혀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큰 힘이 됐어요. 그전까지는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세계 유수 콩쿠르를 휩쓸며 신동 소리를 들었던 그가 세월이 흘러 어느덧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오는 8월에 열리는 국제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참여하게 됐다.
이제는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도 조용히 내려놓고 싶은 눈치다. "제 음악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식어는 싫어요. 백건우 선생님처럼 '건반 위의 구도자' 같은 건 좋잖아요. 뭔가 듣기만 해도 구도하는 모습이 떠오르고요."(웃음)
▲ 임동혁 피아노 리사이틀 = 1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관람료 3만~10만원. ☎02-580-1300.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