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아, 대한민국'을 발표하면서 사전검열제도 폐지를 위한 투쟁에 나서 한국 대중음악의 투사로도 알려진 가수 정태춘. 디컴퍼니 제공

- 한국 사회 지배하는 자본
- 획일화된 기준 강요하며
- 돈과 경제만 보라고 명령
- 세월호 참사 근본원인 돼

- 가수 정태춘과 김태춘
-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는
- 이 시대의 약자들에게
- 꿈을 서로 공유하라 말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미결수 탈주범 4명이 서울 북가좌동의 가정집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였고 모두 자살한 뒤 마지막 남은 지강헌이 떨어진 총알 대신 깨진 유리로 자신의 목을 그으며 외쳤던 한 마디였다. 이 말은, 재벌 중심의 기형적 경제성장과 산업화의 과실이 여과되지 않은 채 온통 한국 사회 여기저기를 물들이다 마침내는 노골적으로 법마저 조롱하게 된 당대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본의 정언명령에 다름 아니었다. 정언명령(定言命令)이란, 그것 자체가 이미 선이므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도덕적 명령을 뜻한다.

우리는 이후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함께 상식과 이성을 넘어서는 자본 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났건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전혀 나아진 바 없고 오히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순진하게 들려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버렸을 정도이다.

그리고 2014년, 우리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정언명령과 맞닥뜨렸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일찍이 '영혼 없는 전문가'라 칭했던 대개의 관료와 엘리트의 입을 통해 그간 우리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언론에서, 그리고 각 기관이나 정부로부터 일상적으로 들어왔던 한 마디, '가만히 있으라'가 그것이다.

■자본과 전체주의의 만남, 동상이몽과 이상동몽이 필요한 시대

20세기 대표적 지성 칼 포퍼는 그의 주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열린사회'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다양한 의견과 비판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 시스템, 그리고 툭하면 닥치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지르는 전문가 연하는 자들이야말로 열린사회의 주적들이라 통렬히 비판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하는 이 열린사회의 적들과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 사회의 총체적 난국을 축소판으로 보여준 세월호 참사는, 그것이 다름 아닌 자본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정언명령을 통해 20여 년 전 우리 사회에 그 실체를 드러냈던 자본의 위력은 이제, '가만히 있으라'는 전체주의적 메커니즘과 만나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고,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며, 자연과 생태를 망가뜨리고, 언론 등 사회의 자정작용을 위한 견제장치의 건강을 무자비하게 해치고 있다.

독재, 전체주의, 파시즘 등의 공통점은 헌법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합의와 견제장치를 무시하고 그것을 초월하는 비합리적이며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될 종교계나 학계까지 나서서 모두가 획일적으로 돈, 돈, 돈을 외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자본의 독재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를 견제해야 할 정부나 권력기관마저 책임을 방기하고 나아가 한통속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이니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모두가 한 입으로 경제, 경제만을 외치는 이 '동상(同床)'에, 더 많은 '이몽(異夢)'이 필요해 보이는 까닭이다. '만장일치는 무효'라던 탈무드의 금언처럼,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저마다 다른 삶을 꿈꾸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강자의 입장에서야 획일화한 기준으로 서열을 매기고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게 편리한 일이겠으나, 약자의 입장에서는 한 시도 쉬지 않는 동상이몽이야말로 이 병든 이데올로기로부터 호명 당하지 않고 제 삶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이상동몽',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만나고 함께 하는 것 역시 긴요한 일이 되었다. 우리가 모두 제대로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열린사회를 위해 말이다.

■ 시인이자 투사, 정태춘

한국 대중음악의 선구자이자 투사 정태춘을 생각하면 늘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마도 그가 없었더라면 나를 포함한 한국의 많은 인디뮤지션들이 자신만의 앨범을 갖기란 불가능했으리라. 이미 1978년 데뷔앨범을 발매한 직후부터 엘리트주의는 물론 상업적인 활동과도 거리를 둔 채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대다수 민중과 양심을 위해 호소하고 투쟁했던 그는 1990년대 초, 사전검열제 폐지를 위해 외롭고도 기나긴 투쟁을 시작했고 마침내 1995년 11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기념비적 결실을 얻어낸다. 한국의 인디 음반들이 이 시기부터 비로소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우연이 아니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대선배에게 아주 직접적인 빚을 지게 된 셈이다.

그간 양심수, 북한 동포, 고 문익환 목사, 시민단체, 청계피복노조, 농민집회, 전교조, 전노협 등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수많은 이를 위한 사회참여 공연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 사회가 보다 열린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온 그의 음악에는 낭만성과 치열한 현실의식이, 삶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는, 소박하고 친근하지만 단호하면서도 날 서 있는, 삶과 사회의 모순들이 혼재하는 독보적인 미학이 존재한다.

■패배자의, 패배자를 위한, 패배자에 의한 음악을 꿈꾸는 뮤지션 김태춘

김태춘

정태춘을 좋아해 이름까지 바꾼 김태춘. 그는 컨트리와 블루스 등 이른바 루츠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이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데모테이프를 한 선생님께 들려준 그는, 얼마 후 그 선생님으로부터 장문의 편지와 함께 정태춘의 앨범 '아, 대한민국'을 선물 받는다. 그때부터 정태춘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음악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면서 이름까지 바꾸게 된 그는, 2007년 고향 마산을 떠나 부산에 왔고 '일요일의 패배자' 등 밴드를 거쳐 솔로로 활동 중이다.

말 그대로 삐딱하기 그지없는 그의 음악은 그러나 솔직하고 거침없는 가사와 비음 섞인 그만의 독특한 창법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묘한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가 지난해 3월 발매한 첫 번째 정규앨범 '가축병원 블루스'는 어떤 동물은 먹히기 위해 키워지고 어떤 동물은 사랑받기 위해 키워지는 가축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을 이긴 자와 진 자로 나눈다면 저는 지는 사람 편이 되고 싶어요. 사실 대부분 사람이 매일 지면서 살고 있잖아요."

누구도 지는 사람 편을 들지 않으려는 이 시대에 패배자들을 위한, 다시 말해 우리 모두를 위한 노래를 가식 부리지 않고 솔직하게 들려주며 열린사회를 위해 동상이몽 하는 그를 오래오래 주목하고 싶은 이유다.


# 정태춘과 김태춘

학창시절 독학으로 기타와 작곡을 배워 이미 많은 곡을 써두었던 정태춘. 그는 1978년 '시인의 마을'을 발매하며 공식 데뷔했다. MBC 신인가수상을 받는 등 서정적 뮤지션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현실 참여적 가사와 집회 참여 등을 통해 민중과 호흡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투사'로 변모했다.

1990년,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그림자들을 가차 없이 까발린 앨범 '아, 대한민국' 발표와 더불어 사전검열제도 폐지를 위한 투쟁에 나섰고 이후 1995년 결실을 얻었다. 2002년 열 번째 앨범을 끝으로 칩거했다가 10년 만인 2012년 새 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로 활동을 재개했다.

김태춘은 초창기 펑크음악을 거쳐 현재는 컨트리, 포크, 블루스 등 이른바 루츠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부산의 뮤지션이다. 본명은 김태훈이며 고등학교 시절 알게 된 정태춘의 영향으로 김태춘이란 이름으로 활동한다. 지난해 3월 첫 앨범을 발표했고 이효리의 5집 앨범에 참여하는 한편 공중파 방송 등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현재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학자·호밀밭 출판사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