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자"고 말했다.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서 어린이에게 인사하는 교황의 모습은 신성과 세속의 사이 문턱 위에 우뚝 서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동시대인' 그대로이다. 사진공동취재단

- '장치 만능주의' 살아가는 현대인
- 어둠에 가려진 것을 꺼내야 한다
-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에게서
- 잊었던 생명의 근원 생각하게 해
- 사회서 소외당한 이들의 존재
- 인식해야 진정한 '동시대인'

"10년 전 우리가 이동권 보장 차원에서 도시철도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며 농성할 때,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럴 돈이 어디 있느냐'며 우리에게 욕한 분들이 주로 노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노인들이 승강기를 제일 많이 사용하지요."

이달 초 태풍이 몰고 온 큰비로 어수선한 부산시청 앞,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 지원'과 '두리발 시 직영' 시범 실시를 요구하는 철야농성장에서 만난 어느 장애인의 말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는 예외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우리 모두 길든 짧든 중증장애인으로 살다 죽는다는 데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쓴웃음 짓는 그의 앞에는 우리 시대가 생산하는 무관심과 무지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긴 어둠의 터널이 놓여있었다. 어쩌면 그는 화려한 빛과 숨기고 싶은 어둠 사이, 그 경계에 거주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어둠은 시각의 산물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1942~)은 '장치란 무엇인가?'(What Is an Apparatus?·2009)에서 우리는 '장치들의 거대한 축적과 증식'이 목적인 장치 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원래 함께 살아감(존재함)을 위해 고안된 장치가 사람을 경험(사용)으로부터 분리하고 인간의 능력을 대리하는 장치의 노예로 훈육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그는 '살아 있는 존재들의 몸짓, 행동, 의견, 담화를 일정한 방식으로 포획, 지도, 결정, 차단, 주조, 통제, 보호하는 능력을 갖춘 모든 것'을 장치라고 부른다.

감옥, 학교, 공장에서부터 컴퓨터, 휴대전화까지 광범위한 현대의 장치들은 가치 생산과 유통의 능력으로 인간을 지배하는데, 이를 통해 장치를 신성시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핵심적 관심은 장치들을 세속화(profanation·신성모독)하여 사람의 경험 공간으로 되돌리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둠에 가려져 외면받는 것을 끄집어내 되살리는 것이다.

그는 장치의 시대가 만드는 시각적 효과로서 빛과 어둠을 논하면서 흥미로운 예를 두 가지 제시한다.

먼저 현대 신경생리학은 우리가 빛없는 환경에 놓일 때, 우리 몸이 망막 주변부 오프셀(off-cells)을 활성화한다고 설명한다. 그 오프셀이 바로 '어둠'이라는 특수한 종류의 시각을 생산한다. 그래서 어둠은 빛의 단순한 부족이나 부재 혹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프셀이 활동한 결과, 즉 '우리 망막의 산물'인 셈이다.

또 한 가지. 천체물리학은 밤하늘을 꽉 채울 만큼의 수많은 성운과 물체가 '팽창하는 우주에서 그 빛이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까닭에, 우리가 지각하는 어둠은 실제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는 빛'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이 어둠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시대를 온전히 껴안고 성찰할 수 있다. 아감벤에 따르면 자기 시대에 진정하게 귀속하는 사람들, '진정한 동시대인'은 "세기의 빛에 눈멀지 않고 그 속에서 그림자의 몫, 그 내밀한 어둠을 식별하는 데 이르는 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는 삶

시인 안도현의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1996)는 존재하는 생명의 자기결정권과 그를 통해 구현되는 존엄의 문제를 환기한다. 그것은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을 얕보는 지상의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생명의 의미 혹은 '삶의 이유'에 관한 서사시다. 작품은 '별종'이라는 뭇 연어들의 '구분 짓는 말'에 조롱받고 왕따 당하며 진통을 겪는 주인공 은빛연어를 통해 생명의 끈을 건강하게 이어가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진지하게 탐색한다. '연어'에서 그 매개는 단순하기 때문에 '낡은 외투처럼' 빛을 잃고 '이제는 갖다 버려야 할' 것으로만 보이게 된 사랑이다.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라는 사랑을 만나 '의미 있는 현재'를 어렴풋이, 그렇지만 강렬하게 느끼지만, 그에게는 무지개를 잡는 것과 같이 남다른 미래의 꿈에 부풀어 있다. '알을 낳는 일'로 표현되는 생명의 대를 잇는 수직적 연결과 그 일을 가능케 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주며 더불어 '지금, 여기 존재'하는 생명을 나누는 수평적으로 연대의 구체적 경험보다 더 거창하고 중요한 삶의 이유를 찾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초록강에게서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며 그것이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또한, 초록강은 인간이 만든 편한 길에 길들면, 연어들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하는 폭포를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두려운 장벽'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초록강과의 대화는 삶의 허상을 깨고 내버려진 자기 능력을 신뢰하고 되찾아, 궁극적으로 자기와 화해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는 과학자 연어가 발견하고 연구한 수로를 폭포의 대안으로 삼자는 여론이 형성될 무렵,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서 상류로 가서 알을 낳는 목표에 충실한 동료들에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쉬운 길(장치)이 연어들을 위한 길이 아니라고 과감하게 반기를 들 수 있다.

■양심에 응답하는 윤리와 실천의 용기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거룩한 죽음의 풍경'에 이르는 생명의 존엄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품 '연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망각의 어둠에 묻고 살았던 단순하지만, 생명의 근원을 가로지르는 윤리적·실천적 측면을 유연하게 부각한다. 인위적인 법·도덕·관행 이전에 생명의 본성을 관통하여 나타나는 마땅한 태도가 윤리적 측면이라면,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긴급한 양심의 요구를 배신하지 않는 용기가 실천적 측면이다.

최근 우리는 이런 요구에 성실하게 응답하는 한 인물을 보았다. 4박 5일 동안 우리와 함께하고 돌아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자"면서 우리 사회의 어둠 속에 가려진 인물들을, 그들의 존재를 식별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무관심과 무지의 어두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려고 노력하던 문제들을 되살렸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프란치스코는 가톨릭교회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신성과 세속의 사이 문턱 위에 우뚝 서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동시대인'이다.

오늘도 장애인들은,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은, 밀양 시민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은 우리 시대가, 우리의 눈이 만들어낸 '특수한 종류의 시각'인 어둠 속에서 싸우고 있다. 바로 이들이 목소리 없고 보이지 않지만 진정한 '동시대인'이 아닐까?

배윤기·부산참여연대 부설 리더십교육센터 소장

# 옆에서 볼 줄 아는 눈, 마음의 눈 가져야

■ 안도현 작가의 메시지

'연어'의 머리말에서 작가 안도현은 "연어에 관해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가 없었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지식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상상력은 곧 지식이라는 빛 혹은 감옥에 현혹되거나 감금되지 않는, 그래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볼 줄 아는 눈'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눈'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 '마음의 눈'으로 보는 능력이다.

그러나 마음의 눈을 상실한 '우리는 불행하게도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연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긴급한 메시지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