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막장'이라고 쓴소리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에는 대중문화가 그나마 현실을 담으려고 노력했는데, 말도 안 되는 상상력으로 종횡무진 하는 게 요즘 대중문화 속에서 생성되는 스토리텔링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오래된 16세기 동양 최고의 환상소설 '서유기'를 읽어보면 드라마의 판타지는 아직 막장 수준은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자 불교를 전파한 역사적 인물이기도 한 현장(삼장법사)의 가족사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간략히 살펴보자. 그의 아버지는 우연히 승상 댁 앞을 지나다 수구 놀이를 하다 튀어나온 공 하나가 인연이 되어 승상의 딸을 아내로 얻는다. 그리고 장원 급제해 부임지로 가는 길에 도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도적은 아내를 빼앗고 그의 신분을 이용해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어머니를 찾아 나선 현장은 이 원통한 사실을 외할아버지께 고하여 도적 토벌에 나서고, 결국 아버지의 원한을 갚는다. 아버지는 잉어였던 용왕을 살려줬던 인연으로 다시 부활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도적에게 붙잡혔던 수치스러움을 잊지 못하고 많은 이의 만류에도 죽음을 선택한다.

소설 '서유기'는 이렇게 민중으로부터 전해진 설화가 가진 전형적인 모티브 외에 다양한 고대 신화와 전설이 녹아있고, 동양의 다양한 종교(유교, 불교, 도교 등)가 소설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이와 함께 스토리텔링 마케팅 전략의 기본 원천 'OSMU'(One Source Multi Use)인 최고의 캐릭터 '손오공'을 빼놓을 수 없다. 근두운을 타고 날아다니고, 여의봉을 휘두르며, 삼장법사가 주문을 외울 때마다 머리가 조여지는 금테 머리띠 '긴고아' 때문에 광폭한 성질을 다스리며 살 수밖에 없는 원숭이를 닮은 손오공 캐릭터는 만화, 영화, 게임, 교육, 음식, 학용품, 장난감 외에도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데 끊임없이 사용된, 동양에서 가장 유용한 스토리텔링의 원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콘텐츠 만들기 열풍과 다르게 아직 많은 이가 '서유기' 완역본을 읽어본 적이 없으며, 선인의 지혜와 동양 상상력의 지평을 보여주는 이 역사적 산물이 단순히 변용 가능한 소재로만 기능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현재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가 막장의 요소와 판타지의 요소가 너무 과잉되고 있다지만, 과거 최고의 막장(?) 소설 '서유기'가 창작될 수밖에 없는 배경과 다를 바 없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의 곤궁함이 클수록 '환상'으로 변형된 이야기들은 해학과 풍자를 통해 민중에게 마음의 쉼터를 주며, 삶의 부조리에 개탄하는 조소를 짓게 만든다는 점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