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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백재호, 장건재, 샤크완 이드레스, 왕웨이밍 |
# '그들이 죽었다' 백재호
- 공감가는 무명배우 이야기 다뤄
- "좋아하는 영화 계속 하고 싶어"
# '한여름의 판타지아' 장건재
- 거장 가와세 나오미 감독과 작업
- "자본 만으론 못하는 영화 하겠다"
# '유골의 얼굴' 샤크완 이드레스
- 이라크 전쟁 블랙코미디로 풀어
- "영화 통해 자국내 문제 알릴 것"
# '섹스어필' 왕웨이밍
-심리 섬세히 묘사한 법정드라마
- "초청 영광…부산은 행운의 도시"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세계적인 거장과 빛나는 스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아시아의 유능한 신인감독도 있다. 신인감독의 향연이라 할 '뉴 커런츠'와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서 주목받는 감독 4명을 소개한다. 몇 년 후 이들의 이름을 세계 곳곳에서 들을지 모르니 기억해두시길.
■'그들이 죽었다'(뉴 커런츠) 백재호
사슴을 닮은 눈망울에 반듯한 이미지. 백재호(33) 감독의 첫인상은 선한 동네 오빠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2004년 CF로 데뷔했고 '쌍화점' 등 몇몇 영화에 출연한 그는 캐스팅의 좌절을 맛보다 영화 공부를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문 김상석 김태희(모두 영화에 출연했다)와 시나리오, 연출, 스태프 역할을 품앗이 했고, 그렇게 완성한 자신의 첫 장편영화 '그들이 죽었다'가 BIFF에 초청받았다.
"시나리오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꿈만 같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무엇인가'란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영화가 도드라지는 이유는 무명 배우가 실패를 거듭하며 좌절하다 희망을 가지는 뻔한 이야기를 상상력과 진지함을 널뛰는 독특한 연출로 진부하지 않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영화가 좋아 준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많이 부족했고 나태했다. 이 영화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찍었다"는 그는 '어떤 영화로 성공'하기보다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관객에게 감독의 의도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도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마음이 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다음 영화는 더 대중적인 이야기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여름의 판타지아'(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장건재
'잠 못드는 밤'으로 주목받은 장건재(37) 감독이 자신의 첫 한·일 프로젝트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BIFF를 찾았다. 일본의 거장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집행위원장인 나라국제영화제 지원을 받아 만든 작품으로, 일본의 작은 도시 고조시를 배경으로 한국 여자와 일본 남자가 운명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한여름의 꿈과 같은 이야기다. 낯선 곳에서 벌어진 일을 낯설지 않게 풀어낸 연출이 인상적이다.
그는 "학창 시절 책으로만 봤던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아 실감이 안났지만 일은 일이더라. 서로 의견을 좁히지 못할 때도 있었다"며 "일본 독립영화계 거장과 한국의 독립영화 감독, 일본 상업영화 스태프가 만나 빚어내는 케미(화학작용)가 있어 즐거웠다"고 가와세 나오미 감독과의 작업 소감을 전했다.
"1회부터 매년 BIFF를 찾았지만, 내 영화로 이곳에 초청받은 것은 처음이라 감사하다"는 장 감독의 목표는 영화 작업을 계속 하는 것이다. 그는 "좋은 작업과 나쁜 작업을 오가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예술가로 살고 싶은 것이 꿈이다. 자본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영화를 계속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표정에 힘이 담겼다.
■'유골의 얼굴'(뉴 커런츠) 샤크완 이드레스
"이라크에서 출발해 유럽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멀리 날아왔다"며 살짝 투정을 부리는 샤크완 이드레스(37) 감독은 이라크 출신이다.
그의 첫 장편영화 '유골의 얼굴'은 이라크-이란 전쟁으로 희생을 감수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웃기면서도 슬프게 그린다. 이라크의 민감한 정치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그 속에 날카로운 비판의 메시지를 버무려놓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대학 시절 법을 전공하고 신문기자와 방송국 PD를 거친 베테랑 언론인답게 첫 연출작도 능수능란한 느낌이다.
그는 "대학 때부터 전쟁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전쟁의 피로가 쌓인 사람들에게 비극적이고 무거운 이야기를 다시 하면 영화를 보지 않을 것 같아 블랙 코미디를 택했다"고 말했다. 그의 연출 의도는 성공한 듯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피식 웃음이 나지만, 이내 마음이 짠해지며 애끓는 부모의 눈물을 외면한 정부의 태도에 화가 나는 감정 변화가 자연스럽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서 정부는 인간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사람들도 변화에 시들해져 안타깝다"는 그는 "이라크 쿠르드족은 영화로 자국 문제를 해외에 알리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영화, 그리고 샤크완 이드레스 감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섹스 어필'(뉴 커런츠) 왕웨이밍
'섹스 어필'의 왕웨이밍(47) 감독은 "인간이 역경을 딛고 나아가는 힘을 어디에서 얻는지 관객과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성폭행한 지도교수와의 법정투쟁에서 감정의 혼란을 느끼는 여대생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법정 드라마지만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를 탁월하게 풀어내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BIFF APM 프로젝트(아시아 프로젝트 마켓)를 통해 제작돼 올해 '뉴 커런츠' 경쟁부문까지 초청됐다. 그는 "매우 영광이다. 부산은 내게 '행운의 도시'"라며 웃었다.
왕웨이밍 감독은 "변호사인 친구가 수임했던 실제 사건이다.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법률적 판단은 뒤로 하고 인간의 본질적 감정에 호기심이 생겼다"며 연출의 계기를 소개했다.
디테일한 법정 신 연출부터 섬세한 캐릭터 표현까지 첫 장편영화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왕웨이밍 감독은 "청소년과 가족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며 "15세 청소년을 둔 아버지로서 이 시대 청소년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섹스 어필'의 여주인공 쿠오 차이 치에와 10년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며 "시간 여유를 두고 캐릭터의 변화를 깊이 있게 담아내고 싶다"는 계획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