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가는 환경과 주변 사람과의 경험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이 나만의 독특한 생각이라고 여기면서 산다. 그리고 이 정신작용은 매우 이성적이며, 전적으로 나의 특성에서 비롯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며 관리된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자기 정체성을 느끼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또 때로는 착한 나에 대해 감격하고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심지어 내 생각은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지내온 여러 가지 경험과는 완전히 무관한 생각이나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의 주변 환경과 인연, 나의 지난 경험이 만들어 낸 사고방식과 안목, 가치 체계 등에서 벗어난 완전히 나만의 독자적인 생각·감정·판단이 존재할 수 있을까.

불교적 입장에서 마음의 메커니즘(업성)을 본다면 마음은 철저히 과거 영향의 결과물이며 주변 상황의 소산이다. 그리고 또 앞으로 내가 일으킬 여러 가지 생각도 결국 업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정해진 틀로 움직일 수밖에는 없다. 이것은 내가 과거 전 생애를 통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었던 여러 가지 현실적 업과 함께 영원히 나의 미래를 엮어갈 정신적 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런 업을 잘 관찰함으로써 부처님이나 깨달은 사람들은 중생의 미래를 능히 보며 이렇게 한없는 미래를 다 보아내는 것을 일러 누진명 혹은 누진통(漏盡通)이라고 한다. 물론 심리학에서도 일반적 생각 대부분이 특정한 상황의 압박이나 유혹으로 인한 결과물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 경우 순수하게 그 사람만의 독특한 정신작용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안목·가치관·욕망·경험치·의지의 결과물로 정신작용의 당연한 귀결임을 느낄 때가 많다.

사람이 자기 지식이나 지혜, 감정이나 습관, 욕망을 벗어나 주어진 환경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일으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또 생각이 일어나고, 머물고, 변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집요하게 바라보면 생각은 항상 깨어있는 그래서 상황에 최선인 상태로 움직이기보다 그저 습관적으로 앞생각을 따라 일어나고 감정의 영향을 따라 단순히 그때그때 상황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아이가 자살을 시도했다. 상담자가 "왜 그랬어"하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빠가 나가 죽으라고 했어요." 상담자가 다시 물었다. "아빠가 정말로 네가 죽었으면 했을까?" "아니요."

기가 막히다. 이 과정에서 한 번만 아버지의 진심을 생각했더라면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아이처럼 상황에 깊은 성찰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생각이 그저 단순한 연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의 연상을 벗어나기 어렵고 일생을 통해 이 속에서 살아가므로 불교에서는 중생이 업력 속에 살아간다고 한다. 순간순간 생각이나 감정이 그저 앞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서 해방됨을 일러 '진실한 마음을 본다'고 하고, 이런 사람을 '깨어있다'고 한다. 업을 보는 사람은 앞의 업에 따라 결정되고 마음을 보는 사람은 상황에 맞게 최선의 길을 간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살아야 한다.

원불교 정관교당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