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에 사는 80대 어르신 한 분을 주인공으로 한 책 두 종류가 올해 1월과 2월 잇달아 나왔다. 언론인 김주완이 쓴 '풍운아 채현국'(도서출판 피플파워)과 언론인이자 친일파 연구가 정운현이 쓴 '쓴맛이 사는 맛'(비아북)이다. 두 책이 주목한 사람은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다. 정운현과 김주완은 백전노장급 현장 경험과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는 스타급 언론인이다. 그런 이들이 1935년생인 팔순의 채 이사장을 만나러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몇 번이나 경남 양산으로 찾아가 책을 완성한다.
무엇이 이들의 발길이 양산으로 향하게 했을까. 두 책은 나란히 지난해 1월 일간지 한겨레에 난 인터뷰 기사를 그 계기로 꼽았다.
"자기 껍질부터 못 깨는 사람은 또 그런 늙은이가 된다. 저 사람들 욕할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저 꼴밖에 될 수 없었던 걸, 바로 너희 자리에서 너희가 생각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 두어라."(정운현 '쓴맛이 사는 맛'에서 재인용)
어르신 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뒷세대는 배워야 한다. 그리고 어르신 세대의 노고와 희생을 고맙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공경이고 존경이며 이는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런데 다른 이도 아니고 노인 당사자의 입에서 이런 '독설'이 나왔으니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당장 '채현국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쏟아졌다. 채 이사장은 전국의 시민 사회 문화 단체에 초청돼 토론과 강연을 하느라 바빴다.
채 이사장은 사업가 채기엽의 아들로 1935년에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다. 중앙방송국(KBS 전신) 1기 연출직으로 입사했으나, 3개월 만에 그만두고 강원도 도계에 있던 아버지의 탄광사업을 돕게 된다. 사업은 하늘을 찌를 듯 번창해 개인소득세 납부 순위가 10위 안에 들 정도('쓴맛이 사는 맛'은 '한때 전국 2위를 기록했다'고 씀)였다.
독재정치가 시작되자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인사들에게 은신처와 활동자금을 제공하고 해직 언론인들에게는 몰래 집까지 사준다. 탄광에서 사고가 난 것을 계기로 경영하던 많은 기업체를 모두 정리해 종사자들에게 나눠준다. 1988년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 효암고와 개운중을 뒷바라지하는 교육자가 된다. '풍운아 채현국'에 따르면 채 이사장은 경제적으로는 "통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적빈한 생활을 한다.
채 이사장의 삶이 깊은 울림과 공감을 부르는 요소가 이런 별난 인생행로에 있는 건 아니다. 그가 평생 공부했고, 실천했고, 반성하면서 산 이 시대의 어른이란 점 때문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 나는 하나도 안 높아졌다고 봅니다. 주둥이로만 괜히, 그것도 또 돈 되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 뿐입니다." "교육? 자발(自發)되게끔 강제하는 것이 교육이다. 신나게 공부를 하고 싶게 어떻게 꼬시느냐?…(아이들이) 지 공부 하도록 해야지."
책 두 권에서는 '얍삽'하지 않게 온몸으로 평생을 산 거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공부와 반성과 사유의 힘도 있다. 이런 면모를 보며 많은 이가 사회의 어른에 대한 갈증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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