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영화의전당 두레라움 광장에서 열린 '아주담담'에 참석한 정성일(왼쪽) 왕빙 감독.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천당의 밤과 안개' 비화 공개

5일 오후 영화의전당 두레라움 광장에서 열린 '아주담담 왕빙과 정성일, 영화를 만드는 자의 자세를 논하다'에서 기묘한 만남이 이뤄졌다. 왜 기묘한지 설명이 필요하다. 정성일은 시네필이 아니라도 영화에 흥미가 있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국내 최고 영화평론가 중 한 명이다. 중국 왕빙 감독은 9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 '철서구'를 만든 주인공이다. 이날 모더레이터를 맡았던 허문영 영화평론가는 '늙은 신인'으로 정성일을 소개했고 왕빙 감독에 대해서는 21세기 다큐멘터리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게 만났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나섰다. 정 감독이 카메라에 담은 대상이 바로 왕빙 감독이다. 영화평론가가 다큐멘터리 감독이 돼 세계적 다큐멘터리 감독의 작업 과정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천당의 밤과 안개'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 커런츠 부문에서 상영하고 있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4시간에 달한다. 참고로 정성일은 2009년 '카페 느와르'를 만들어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를 찍던 사람에서 피사체 또는 배우가 된 소감이 어떨까. 왕빙 감독은 "그동안 내 작품이 BIFF에 소개돼 자주 찾았는데 이번에는 배우로 왔으므로 기분이 특별하다"며 "5일 오전 처음으로 영화를 봤다. 보기 전에는 몹시 불안했고 압박감도 느꼈는데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다른 다큐멘터리 작품 속에 직접 등장하기는 쉽지 않다. 왕빙 감독은 정성일 감독의 촬영 요청을 받고 5초 만에 수락한 이유에 대해 "다큐멘터리는 진실을 담는 과정이어서 비밀이 없어야 한다"며 "그래서 정 감독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에서 왕빙 감독의 잠자는 모습이 많이 등장한 것이 화제가 됐다. 허문영 평론가는 "왕빙 감독이 잠드는 어떤 순간이 이 영화의 본질이다. 충격적인 감흥에 빠지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성일 감독의 고백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신병원 촬영 장면을 편집하던 중 문득 내가 찍으려던 게 왕빙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이고 정신병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병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다면 지난해 BIFF에서 상영한 왕빙 감독의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권한다"고 말했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작업을 하던 왕빙 감독을 찍은 것이 정성일 감독의 이번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