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교방굿거리춤을 선보인 하연화, 남성 춤꾼과 '사랑가' 무대를 펼친 황지인, 이윤혜의 소고춤.

기획시대라고들 한다. 특히 예술문화기획은 기존 관행을 답습하지 않는 높은 창의성, '일이 되게 하는' 현실 감각과 실천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현장 전문가들이 직접 들려주는 예술문화기획의 세계를 통해 창의성과 실천력의 조화를 모색하는 시리즈를 격주로 연재한다.

- 김동민·황무봉·이매방·김진홍…
- 1세대들 전국구 명성 누렸지만
- 상품화·권력화된 춤에 밀려
- 지역 춤판은 나날이 쇠락의 길

- "다시 부활의 무대 꾸며보자"
- 이윤혜·하연화·황지인 등
- 중견 춤꾼 3인과 의기투합
- 속춤과 만남 등 파격 선보여

오늘날 춤은 대중에게서 멀어져 있다. 전통춤은 더 그렇다. 물론 춤의 스펙트럼은 넓다. 전통춤에서 거리춤까지, 예술춤에서 아이돌 춤까지, 젊은 세대의 클럽춤이나 관광버스 막춤까지. 이 모든 춤을 하나의 춤 문화 안에 동등하게 넣을 경우 앞의 말은 틀렸다. 오히려 이 경우 춤은 대중과 아주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아이돌의 춤이나 힙합, 비보이 춤을 쉽게 접한다. 그렇다면 대중과 떨어진 춤은 예술춤과 전통춤에 한정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역시 부산에나 맞는 말이다. 서울의 경우, 발레나 전통춤은 대중과 아주 가까이 있다. 발레나 전통춤 공연장에 관객이 몰리고, 즐기는 관객층이 많이 늘고 있다. 전통춤에 대중이 매혹되는 요소가 있다는 말인 셈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오늘 우리 시대는 몸의 시대라 하는데, 몸 자체를 매체로 하는 예술춤은 오히려 쇠퇴하는 예술이 되고 있다. 반대로 아이돌의 춤, 비보이 등의 스펙터클한 춤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펙터클에 포획된 춤, 자본과 권력이 유포하는 상품화된 감성의 춤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나고 있는 예술춤은 이런 춤과 대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도 있다.

새로운 시대에도 예술의 한 장르로서 당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춤이 어떠해야 하는지와 아울러 스텍터클한 춤으로 쏠린 대중의 관심을 되돌려 세워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고 있다.

1. 전통춤 속 감응의 힘 살려라

한때 부산이 춤이 아주 센 지역으로 불릴 수 있었던 데는 전통춤이 큰 역할을 했다. 부산의 1세대 춤 예술가 김동민 황무봉 이매방 김진홍 등 뛰어난 전통 춤꾼들은 부산춤의 토대를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들만의 춤 세계를 구축하며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특히 이매방의 승무와 살풀이춤, 김진홍의 동래한량무와 승무 등은 명무의 반열에 올라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런데 이 춤들은 단지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니다. '보여주기 위한 춤'이 춤꾼과 관객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춤이라면, '감응의 춤'은 둘 사이의 거리를 없애는 춤이다.

이매방과 김진홍의 춤은 시각적인 춤이라기보다는 촉감적인 '감응의 춤'에 가깝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즐기는 관조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 춤은 현란한 기교와 예쁜 자태, 넘치는 끼의 발산과 과도한 멋 부림을 자랑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무뎌진 몸의 오감 체계를 파고들어 그 아래의 미세지각을 뒤흔드는 춤이었다. 그러기에 이 춤에 관객은 전율했다. 이 춤은 우리의 몸에 '새로운 감성'을 심어놓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날 이 춤은 대중에게서 멀어져 있다. 스펙터클한 춤에 둘러싸여 무기력해진 감응의 춤, 제자들에 의해 잘 전승되고 있음에도 대중에게서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명무(名舞)의 흐름(流)이 이어져 일가(一家)를 이루게 될 때까지 계속될 춤판'을 연다는 이번 공연 '명무류일가'(지난달 13일 해운대문화회관 대극장)를 기획했다. 공연에는 이윤혜 하연화 황지인이 참여하기로 했다. 부산의 전통춤을 이끄는 대표적 중견 춤꾼이 한데 모여 서로의 춤을 비교하고 경쟁하는 춤판을 열기로 한 것이다.

2. 좋은 공연장은 많지 않았다

이윤혜의 춤은 야무지고 차지다. 감칠맛 나게 맺고 푸는 리드미컬한 동작의 다부짐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자그마한 몸집에서 나오는 발랄함과 옹골찬 움직임이 놀라울 만큼 잘 조화된, 그야말로 '경쾌한 중량감'을 지닌 춤이다. 하연화의 춤은 세련되고 깔끔하다. 잽싼 몸놀림과 짙은 감각적 질을 동시에 지닌 그의 춤은 강한 표현력을 지녔다. 동작의 빠름과 느림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강하게 어필할 줄 아는 빼어난 춤꾼이다. 황지인의 춤은 스승 김진홍의 춤을 잘 이어받고 있다. 눈에 띄게 튀는 멋을 극도로 자제하는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절제된 동작과 단아한 움직임이 일품이다. 담백함과 소박함을 특징으로 하는 황지인의 춤은 잔잔한 물결과 같이 오감 너머로 스민다.

이번 공연은 지난 10여 년 필자의 기획으로 진행한 '춤추는 남자들-전통춤판'과 함께 춤의 고장 부산의 전통춤을 체계적으로 대중화하고자 했다. 이를 테면 '명무류일가'와 '춤추는 남자들-전통춤판'은 춤의 고장 부산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쌍끌이 공연인 셈이다. 먼저 극장과 레퍼토리를 정하는 일이 필요했다. 또 '일고수 이명창'이라 했듯이, 음악도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리 좋은 춤도 음악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는다면 빛을 발하지 못한다.

모두 아홉 작품, 모든 작품을 생음악 반주로 하기로 한 것은 부산 춤계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극장은 논의 끝에 해운대문화회관으로 정했다. 집중도가 뛰어나 전통춤을 추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무대라는 데 모두 쉽게 동의했다. 아마도 전통춤에 최적화한 무대는 대청이나 사랑방 같은 무대, 혹은 마당일 것이다. 아쉽게도 부산에는 이런 조건을 갖춘 무대가 없었다. 극장을 정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은 부산에 전통춤을 추기에 적합한 공연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극장 대부분이 객석과 무대가 너무 떨어져 있어 공연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는 구조였다.

전통춤은 온실의 꽃이 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전통춤은 다시 대중에게로 활짝 열려야 한다. 스펙터클한 춤은 언제나 춤과 대중의 사이를 벌려놓는다. 춤을 시각적 관조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춤이 힘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고정된 감각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한 힘은 전통춤이 가진 생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중과 소통할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춤이 전통춤이다.

3. '춤의 확장'을 위한 배치

명무류일가는 기존 공연 관행에서 벗어나는 최소한의 이탈의 성분을 가진 공연으로 짰다. 기존의 공연 관행, 전승 관행에 무언가 조금 보태거나 빼 살짝 배치를 바꾸는 공연이다. 그럼으로써 춤과 대중의 거리를 없애고자 했다. 이번 공연에서 출연자 세 명은 각자 잘 추는 두 가지 유파의 춤을 선보이고, 세 번째 춤은 남성 춤꾼과 2인무를 추도록 했다. 전통춤과 민속춤의 만남, 여성 춤꾼과 남성 춤꾼의 만남을 통해, 오래 갈고닦은 자신의 춤을 뽐내면서도 춤의 폭을 확장할 수 있게 했다. 이윤혜는 진주삼천포농악 소고 이수자 류재철과 소고춤을, 하연화는 전통춤꾼 남기성과 허튼덧배기춤을 추었다. 황지인은 동래학춤 전수조교 이광호와 사랑가를 추었다. 이들의 모든 춤에 젊은 소리 '쟁이'가 생음악 연주로 생동감을 더했다.

요즘 부산 공연판에서 '핫한' 사람은 무대감독 이연승이다. 부산의 공연은 그가 무대감독으로 참여하는 공연과 참여하지 않는 공연으로 양분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바쁘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한 치 흐트러짐도 없이 생음악 리허설과 총연습, 그리고 공연을 치러내는 춤꾼들의 프로 근성에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회식 자리에서는 음주와 폭풍 수다로 흐드러지게 놀 줄 알고, 얼마 전 타계한 이매방 선생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던 여린 춤꾼들이었다고 한다.

뛰어난 춤꾼은 어디서나 제대로 놀 줄 아는 춤꾼이다. 이 말은 뛰어난 춤꾼의 몸은 언제나 외부를 향해 활짝 열려 있으며, 또 외부에서 오는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안다는 말이다. 그들의 스승들이 그랬듯이, 이번 공연에 참여한 춤꾼들은 참 잘 놀았다. 앞놀이에서도 무대에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뒤풀이에서도.

최찬열·춤평론가 부산문화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