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류의 황제'로 불리는 전복. 1960년대 이전만 해도 포작과 잠녀가 없었다면 전복을 먹을 수 없었다.

- 조선시대 진상품 전복·미역 등
- 잠수해서 채취하던 남성들

- 양인이 맡는 六苦役 중 하나로
- 장가도 못 들 정도로 삶 고달파
- 줄지 않는 과중한 역 부담에
- 익사하거나 도망치기 부지기수

- 임진왜란땐 군역까지 맡아
- 이순신 전라좌수영 함대에
- 포작선 46척 포함돼 맹활약
- 현종 때 포작역 혁파도 잠시
- 배 노 젓는 격노의 멍에 씌워져


고래 기름 등불 하나 바다 위를 비추는데.

몸 뒤집어 파도 속에 마음대로 출몰하네.

저들 무슨 기술로 이렇게 하는 건가.

단지 어려서부터 익힌 덕분이라네.

-명재 윤증(尹拯)의 시 '전복 따는 것을 구경하며'-

한 어민이 부산 기장 대변항에서 갓 채취한 생미역을 정리하고 있다. 국제신문DB

요맘때면 반드시 맛보아야 할 해산물이 있다. 전복과 미역이 바로 그것. 전복(全鰒)은 2~4월 사이 살이 꽉 차며, 미역도 12월부터 4, 5월 사이가 수확기로 맛이 가장 좋다. 바야흐로 지금은 전복과 미역의 제철인 셈.

전복은 예로부터 '조개류의 황제'로 불릴 만큼 고급 수산물이었다. 지금이야 양식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있다지만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서민에게는 신병치레 뒤에야 겨우 맛볼 수 있을 정도로 귀했다. 단백질과 비타민 등이 풍부해 피부미용, 자양강장, 산후조리, 허약체질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복은 오돌오돌 씹히는 식감과 감칠맛으로 여러 미식가의 입맛도 사로잡고 있다.

미역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익히 알려졌듯이 산모의 몸을 보하는 '산후선약(産後仙藥)'일 뿐만 아니라 변비나 비만을 예방하고 철분과 칼슘을 보충하는 데도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해조류에 비해 값이 헐하고 국, 밥, 장아찌, 무침, 볶음, 쌈 등으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 '국민 해조류'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부산시 기장군은 전복과 미역의 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미역은 '기장 미역'이란 이름으로 전국적 지명도를 자랑할 정도다. 이렇게 기장이 전복과 미역으로 유명세를 탄 것은 천혜의 바다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장 앞바다는 봄과 가을에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조류도 바닷물이 위아래로 뒤섞이는 등 거센 편이어서 부유 유기물이 풍부하다. 미역 성장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역을 먹고 사는 전복도 많이 날 수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양식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지금은 전복과 미역이 대부분 양식으로 생산된다. 하지만 그 이전은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 직접 채취해야만 했는데 이를 담당한 이들은 포작(鮑作)과 잠녀(潛女·해녀)였다. 이들이 없었다면 바다가 우리에게 내어 준 또 하나의 진미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이번 이야기는 거친 바다와 싸우며 고된 삶을 일구어 온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보았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바다와 똑닮은 삶을 살아 온 이들. 이제,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8세기 경상좌병영(울산 소재) 내 세워진 전복 채취 금지 비석. 부산박물관 제공

고달픈 포작 노릇

포작은 조선시대에 전복과 물고기 등을 잡아서 진상하는 역(役)을 맡은 남성을 말한다. 즉, 잠수어업을 하는 남성이 바로 포작인 것이다. 요즘은 해산물 채취를 여성인 잠녀들이 담당하지만 포작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

포작은 문헌에서 포작인(鮑作人), 포작간(鮑作干), 포작한(鮑作漢)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포작역을 짊어졌는데, 이 역은 양역(良役), 즉 양인이 져야 할 역 중에서도 매우 힘들다고 한 여섯 가지 고역(六苦役) 중 하나였다. 대체 포작역은 얼마나 고달픈 역이었을까?

순조 때(1825년) 우의정 심상규(沈象奎)는 "발가벗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 자맥질을 하자면 두려워서 떨고 추워서 떨고 하니 죽지 않은 것만도 참으로 다행이며, 해안에 불을 피워놓고 바다에서 나와 몸을 덥히면 손발이 얼고 피부는 터져 귀신처럼 시커멓고 추하다"며 이들의 딱한 사정을 전했다. 한데 이들의 생활을 더욱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추운 바닷속 물질만이 아니었다. 이들을 더욱 참담하게 만든 것은 바로 과중한 역 부담과 탐관오리의 횡포였다. 17세기 초 김상헌(金尙憲)은 '남사록(南?錄)'에서 "제주에서 진상하는 전복의 수량이 많은데다가, 관리들이 사욕을 채우는 것이 또한 몇 배나 된다. 포작인들은 그 일을 견디다 못해 도망가고 익사하는 자가 열에 일곱, 여덟이다"며 그 실상을 전했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남성이 적고 여성이 많았던 제주에서조차 포작에게 시집가려는 여성이 없었다. 그리하여 포작 중에는 홀아비로 살다가 늙어 죽는 자가 많았다. 포작은 처첩을 거느리기 어려울 정도로 고역(苦役)에 시달리는 고달픈 삶을 살았던 것이다.

고역을 견디다 못한 포작들 중에는 제주에서 도망쳐 육지로 나온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 지역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꾸려가고자 했다. 하지만 이도 결코 녹록지는 않았다. 육지민들은 이들을 자신들과 분리하며 경계했다. 출륙(出陸) 포작들이 많이 정착한 곳 중 하나인 경상도 울산에서는 제주 출륙민을 '두모악(豆毛岳)'이라고 불렀다. '두모악'은 제주 한라산을 뜻한다. 물론 '두모악'이라고 해서 모두 포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 중 다수가 울산에서도 전복 등 해산물을 진상하는 역을 맡고 있었던 것을 보면 포작 출신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이들은 목숨을 건 출륙을 감행했지만 육지에서도 포작역 부담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자 출륙 포작들 중에선 아예 육지 정착을 포기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어떤 자들은 해변에 장막을 친 후 일정한 거처가 없이 배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들은 물고기 등을 잡아 육지민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미암일기(眉巖日記)'의 저자 유희춘(柳希春)은 종종 포작으로부터 물고기를 구했는데, 이 포작이 바로 그런 자였을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생활하다가 역이 부과되면 이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살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또 어떤 자들은 해적으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이따금 상선(商船)을 겁탈해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을 살해했는데, 간혹 사람이 쫓아가는 바가 있으면 왜인의 신발(倭鞋)을 버리고 가서 마치 왜인이 그렇게 한 것 마냥 꾸며대기도 했다.

헌종 때(1843년) 포작역이 혁파되면서 포작의 수는 급속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격군(格軍)이라는 또 다른 멍에가 지워졌다. 격군은 배의 노를 젓는 사람을 말하는데, 격군역은 포작역과 마찬가지로 육고역 중 하나였다.

포작에게 격군을 맡게 한 이유는 이들의 배 다루는 능력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부리는 배는 "가볍고 빠르기가 비할 데 없어서, 비록 폭풍과 사나운 파도에도 조금도 두려워하고 꺼려함이 없으며, 왜적(倭賊)이 이를 만나면 도리어 두려워해 피해 달아난다"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들은 임진왜란 때 맹활약을 했다. 1592년 5월 4일에서 8일까지 출전한 이순신(李舜臣)의 전라좌수영 함대에는 판옥선 24척, 협선 15척과 포작선 46척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순신도 포작을 "배를 능히 조종할 수 있는 연해 사람들"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이들의 조선(操船) 능력은 널리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전투병은 물론 정보원으로도 활약하며 수군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온갖 역경을 견디며 겨우 포작역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다시 격군역이 지워졌으니 포작의 인생은 참으로 가련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격군역을 피하기 위한 포작들의 노력도 필사적이었다. 때론 불법적인 방법을 감행해서라도 신분을 상승시켜 역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포작이 소멸해 가면서 해산물을 진상하는 일은 자연 여성의 몫으로 남겨졌다. 제주에 잠녀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제 집 앞마당 드나들듯 거친 바다에 몸을 던져 고단한 삶을 강인하게 이겨내 온 슈퍼우먼 잠녀. 그녀들이 역사의 전면에 서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