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2국을 패한 뒤 대국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이창호 같은 두터운 기풍 일관
- 중반까지 백중세 유지했지만
- 바꿔치기 실패로 형세 기울어
- 마지막 1분 초읽기에 결국 무릎
- 바둑계 "1승 할 수 있을지…" 침통

"인간 바둑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수다" "분명 (알파고의) 실수한 수였는데 결과적으로 알파고에게 도움이 됐다."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이 이틀 연속 구글이 개발한 바둑프로그램인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에 불계패를 당하자 세계 바둑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 9단은 10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2국에서 알파고에 211수 끝에 백 불계패했다.

■"패인을 분석하기 힘들 정도"

이날 대국을 지켜보던 바둑계는 "패인을 분석하기 힘든 게 더 큰 고통"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 9일 첫 대국 전 이 9단의 5전 전승이나 4승 1패를 점쳤던 국내 바둑 기사들도 이제 "1승이라도 할 수 있을지…"라며 비관론으로 바뀌었다.

이날 대국에서 이 9단은 "'돌부처' 이창호 같이 둔다"(유창혁 9단)는 평을 들을 정도로 평소와 다른 신중함으로 임했다. 실수가 전혀 없는 대국이었지만 심리전에서 앞선 '기계' 알파고를 넘지 못했다.

알파고는 제2국에서도 인간의 상식을 벗어나는 변칙 수를 뒀다. 대국을 지켜보던 프로기사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알파고는 초반 3수째 소목 포석을 펼쳐 주위를 긴장시켰다. 1국에서 양 화점 포석을 펼쳐 이세돌을 제압했던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유럽챔피언 판후이 2단과의 대국에서도 5판 모두 화점 포석을 펼쳤다.

이 9단과 프로기사들을 더욱 놀라게 한 수는 13수째다. 알파고는 우하귀에서 정석을 늘어놓다 갑자기 손을 빼고 상변에 '중국식 포석'을 펼쳤다. 심판을 맡은 이다혜 4단은 "프로기사들이 '이렇게 두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개념들이 있다"며 "그런데 알파고가 인간의 그런 개념을 완전히 깨는 수들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 4단은 "프로기사들이 깜짝 놀랄 만한 수를 두는 것을 보고 확실히 인간과는 다른 체계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9단도 당황한 듯 초반에 5분 가까이 장고를 하다 좌변을 갈라쳤다. 이어 알파고는 다시 우하귀로 돌아와 흑이 한 칸 벌린 곳을 들여다봤다. 이 수에 대해선 대다수 프로기사가 '악수'라고 지적했으나 일각에서는 "무슨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의구심도 품었다.

알파고는 37수로 우변 백돌에 입구 자로 어깨를 짚었다. 이 수 역시 이 9단은 물론 대다수 프로기사가 당황한 수였다. 의외의 수를 당한 이 9단이 10분 가까이 장고하다 중앙으로 밀어 올리자 알파고는 한 수만 받은 뒤 이번에는 좌하귀로 방향을 틀었다.

좌하귀에는 알파고가 먼저 전투를 걸었지만, 이세돌이 하변을 타개하면서 좌변에도 집을 만들어 미세하게나마 앞선 채 중반으로 돌입했다. 특히 이 9단은 중반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다 하변에서 집을 확보해 다소 앞섰다.

■알파고, 갈수록 실력 '탄탄'

하지만 이후 알파고가 중앙 백 대마를 공격하자 갑자기 흔들리고 말았다. 알파고의 날카로운 맥점에 위기를 느낀 이세돌은 대마를 전부 살릴 가능성이 없자 좌상중앙의 다섯 점을 떼주고 우상귀 흑집을 도려냈다. 이 바꿔치기는 명백히 이 9단의 실패라는 게 프로기사들의 평가다. 바꿔치기에 실패하면서 반상의 형세는 갑자기 알파고 쪽으로 기울었다. 전날 알파고의 우변 침투 한 방에 무너졌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 9단은 이후 마지막 1분 끝내기에 몰리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인공지능'은 좀처럼 허점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 9단은 전날에 이어 다시 돌을 던졌다. 알파고는 이날 후반으로 갈수록 치밀한 계산에 의한 수 읽기 실력을 보여줘 주위를 놀라게 했다.

유창혁 9단은 "이 9단이 자기 스타일의 바둑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며 "적극적으로 두지 못한 것이 패인이다. 너무 안전하게 뒀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