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총림 범어사가 소장한 가치 있는 불교 문화재가 보관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사장되고 있다. 범어사는 경남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이지만 소속 성보박물관은 전시·수장공간이 좁아 유물을 제대로 전시하기는커녕 보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9일 밝혔다.

	9일 부산 금정구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된 대형 탱화가 공간이 부족해 절반 이상 말아둔 상태에서 전시되고 있다. 서정빈 기자

성보박물관은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를 비롯해 주범망경·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불조삼경·금장요집경 등 5점의 보물과 54점의 시 지정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아직 지정받지 못한 유물까지 포함하면 박물관이 보유한 문화재는 총 1325점에 이른다. 2003년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사찰과 전각 등에 산재한 문화재를 모았고, 유물을 개인적으로 소장했던 스님들의 기증이 잇따라 문화재가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박물관 규모는 범어사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수준이다. 성보박물관 전시관 면적은 338㎡로 현재 전시 중인 문화재는 30여 점에 불과하다. 바닥~천장 높이도 2.6m로 낮아 대형 불화는 말린 상태로 전시되고 있다. 통도사와 해인사 성보박물관의 전시실 규모는 각각 1434㎡, 1703㎡로 범어사의 4.2배, 5배에 달한다.

범어사는 상설 전시와 기획전시 공간을 따로 구분해 놓은 다른 박물관과 달리 전시공간도 한 곳뿐이다. 이 때문에 기획 전시를 위해서는 절반의 문화재를 빼거나 이젤을 세워야 하는 실정이다. 이젤에 문화재를 전시하면 관람객의 손을 타 훼손될 우려가 크다.

더 큰 문제는 전시하지 않는 유물을 보관하는 수장고다. 문화재는 불화·금속·목재 등 그 특성에 따라 보관 적정 온·습도가 달라서 분리해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범어사의 수장고는 한 곳(85㎡)뿐이라 1000여 점의 유물이 뒤섞여 있다. 통도사와 해인사 수장고 규모는 각각 261㎡, 226㎡이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에는 유물을 연구·조사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 유물은 재조명을 통해 비로소 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이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학예연구사 2명이 있지만 문화재 지정을 위해 유물을 심의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조명을 받아야 할 소중한 유물들이 수장고에 방치돼 있다.

양맹준 전 부산박물관장은 "범어사 성보박물관은 14교구 본사이자 금정총림 박물관으로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박물관의 기능은 수집·보존·연구·홍보(전시) 기능을 다해야 하는데 어느 하나 제대로 이뤄지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