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워 쓴 왕관 덕에 왕이 된 루이 1세
- 겁 많고 순진한 양들 위에 군림하는 등
- 우리 사회 권력 가진 사람들 태도 풍자
- 코미디처럼 웃기지만 묵직한 메시지

하늘에서 왕관이 떨어졌다. 왕관은 바람을 타고 초원을 노닐던 양 한 마리 '루이'의 머리로 굴러 올라갔다. 루이는 우연히 주워 쓴 왕관 덕에 왕이 됐다. 루이 1세가 된 그는 겁 많고 순진한 양들을 통치하기 시작한다.

어른들의 권력사회를 풍자하는 그림책 '양들의 왕 루이1세' 중 한 장면.

왕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이라며 이것저것 하는데 그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다. 양들을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그 코미디 같은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데 있다. 책 양들의 왕 루이 1세는 어른의 권력사회를 풍자하는 그림책이다.

이 책을 쓴 프랑스 작가 올리비에 탈레크는 70여 편의 작품 가운데 2009년 낸 그림책 '무릎 딱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다. 탈레크는 여러 인터뷰에서 글과 그림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글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그림이 설명하고 그림이 표현하지 않은 부분을 글이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그림은 맡은 '무릎딱지'도 글은 엄마의 죽음을 맞닥뜨린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 슬픔을 간결한 문체로 덤덤하게 전하지만, 그림은 온통 붉은색으로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탈레크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캐릭터의 눈빛과 표정, 분위기 등 묘사가 자세하다. 또 색감이 풍부하다. 이런 점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으로 이야기하던 그가 2012년 그림책 '워털루 트라팔가르'를 시작으로 '똑똑한 수수께끼 그림책 1, 2' 등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두 짧은 글이지만 주제는 명확하다. '양들의 왕 루이 1세'도 마찬가지다.

양들의 왕 루이 1세에 짧은 블랙 코미디 같은 우화를 담았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태도를 풍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된 루이는 왕이라면 마땅히 근사한 지휘봉과 대대손손 물려줄 의자, 밤을 지켜줄 침대가 필요하다는 생각부터 한다. 다른 양(민중)을 위한 생각은 전혀 없다. 연설이 필요하다며 단상에 올라 보여주기식 통치만 한다.

심지어 양이 사슴이나 멧돼지, 사자를 사냥하러 간다. 루이는 자기 발걸음에 맞춰 행진하라 명령한다. 루이의 도도한 표정과 뻔뻔한 차림새는 우리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을 풍자한다. 자기와 닮은 양만 살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모습에서는 히틀러 같은 독재자도 떠오른다.

르 몽드, 리베라시옹, 텔레라마 등 프랑스 내 여러 신문과 잡지에 일러스트를 기고하며 평소 촌철살인 같은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해 온 탈레크가 전하는 능청맞은 동화다.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왕이 된다면?' '우리가 양이라면 어떻게 할까?' 마지막 장면까지 우습지만 한편으로 묵직한 메시지가 담겼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탈레크 식 반성문이자 권력에 대한 경계다.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