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중국이 발명한 제도다. 수 문제가 587년 처음 시행했다. 그 전까지 중국은 귀족의 전성시대로 지방정부의 요직은 토착 귀족이 독점했다. 시험을 통해 능력 있는 자를 뽑겠다는 과거는 황제가 귀족의 기득권과 싸우기 위해 고안한 무기였던 셈이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송 대 이후 향시와 회시, 전시로 나눠졌다. 책에 따르면 지방에서 3년마다 향시를 실시해 그 합격자인 거인을 북경에 보냈다. 북경에서 거인들을 모아 치른 회시에서 불과 300명 정도를 뽑고 진사로 불렸다. 북경 공묘에는 원(元), 명(明), 청(靑) 3대에 걸친 진사 5만1624명의 이름과 본적이 적힌 198개의 석비가 세워져 있다.

그 진사들이 황제 앞에서 치르는 시험이 전시다. 황제가 시험관이라 문제도 이전까지와 달리 칙어 방식이라고 한다. "짐이 생각건대"로 시작해서 "그대들은 천하의 인재이니 다음 문제에 대해 평소의 포부를 듣고자 한다"와 같은 형식이다. 답안도 황제의 질문에 대해 대책과 의견을 아뢰는 글이므로 상주문 형식이다. "소생이 답을 올리겠습니다만"으로 시작해 "신과 같이 미숙한 자에게 고금의 정치 득실에 관한 의견을 구하고자 하시니 실로 황송하고 감사한 일이라 사료됩니다"와 같은 내용을 쓰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 시험에서 1등을 한 사람을 장원(壯元)으로 부른다. 장원은 최대 최고의 영광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가문과 고향, 지방정부에도 경사였다. 이 장원급제자는 한국에서처럼 중국의 소설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과거는 명 청으로 내려오며 더욱 힘들어져 거인이 되기 위한 향시는 대략 100명에 1명꼴의 비율로 합격했다. 그 다음의 회시는 거인 30명당 1명꼴의 합격률이지만 충분히 선택된 사람들끼리 겨루는 시험이라 경쟁이 치열했다. 저자는 시험에 응시한 자로 따지면 약 3000명 당 1명만이 진사 지위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실력뿐 아니라 과거 운도 따라야 했다.

우리나라도 고려 958년에 과거를 도입해 1894년 갑오개혁까지 유지했다. 조선에서도 과거 응시자는 크게 늘어 숙종이 실시한 알성시 때는 응시생이 한꺼번에 입문하다 8명이 밟혀 죽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쟁률도 날로 높아져 이남희 교수에 따르면 영조 15년인 1739년 알성시에는 1만6000명이 응시하고 10명이 합격해 1600대 1이었다. 영조 47년인 1771년 문과 시험에선 1만4670명 응시자에 20명을 선발해 경쟁률이 733대 1이었다. 경쟁률이 아무리 높아도 유생들은 과거로 몰렸다.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과거는 시험지옥이었다.

유럽에서 귀족이 관리를 독점하던 시절에 혈통도 따지지 않고 실력이 있으면 누구나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정신만으로도 과거는 그 당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진보적인 제도였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수록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는 사회의 앞날을 막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한국의 과거제도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일류대학을 들어가고자 하는 한국 대학입시는 과거와 닮은꼴이다. 시험에 합격하기는 어려우나 한번 합격하면 평생이 보장된다. 서울대 출신은 한국의 요직을 독점한다. 고등학생 시절, 시험 한 번 잘 쳐서 얻은 기득권을 누구도 넘보기 어렵다. 그래서 대학입시도 초등생부터 준비하는 시험지옥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대학입시에 힘을 쏟아도 그건 국내 경쟁용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개인과 나라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한국의 입시 열풍도 옛 과거처럼 우리 앞날을 옥죄는 사슬은 아닐까?

정광모 소설가·작가의 드론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