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희빈 저주 사건 등 9건 선별
- 동물의 사체와 뼈 몰래 묻어
- 정적·연적에 저주행위 일삼아
- 효종 땐 근절위해 수리공사
- 권력 배제자·무속인 주모 이채
"지난 정유년(丁酉年·1477) 윤씨가 몰래 독약을 품고 사람을 해치고자 하여, 곶감과 비상을 주머니에 같이 넣어두었으니 이것이 나에게 먹이고자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는 일이나 혹은 반신불수가 되게 하는 일, 사람을 해하는 방법을 작은 책에 써서 상자 속에 감춰두었다가 일이 발각되었다. 대비께서 지금까지도 이것을 가지고 있다."('성조실록' 10년 6월5일, 성종의 말 중에서)
| |  |
| 한 TV 방송에서 방영된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은 김혜수가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활을 쏘는 장면. 국제신문 DB |
조선 왕조의 궁궐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갖은 음모가 판을 치는 복마전이다. 왕을 둘러싼 권력 투쟁과 왕의 주변 여인 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늘지고 음습한 조선 왕실의 한편에서는 나라를 뿌리째 흔드는 저주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이 책은 조선 궁궐에서 발생한 아홉 건의 '저주 사건'을 선별해 조선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부산박물관 학예사인 저자는 이능화의 '조선무속고'를 통해 조선시대의 저주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이 책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사건을 다룬다.
이 책은 대부분 조선 역사를 다룬 책과 같이 궁궐을 배경으로 하지만 역사에서 배제됐던 무속인들과 권력에서 밀려났던 이들이 사건의 주모자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책에서 다루는 조선을 대표하는 저주 사건은 ▷성종 시절 저주상자 배달 사건 ▷중종 시절 작서 사건과 목패 저주 사건 ▷광해군 시절 무녀 옥사 사건 ▷인조 시절 저주 사건과 번침 ▷효종 시절 조귀인의 뼈 저주 사건 ▷숙종 시절 장희빈의 저주 사건 ▷영조 시절 무신당의 저주 사건 ▷정조 시절 존현각 자객 침입 사건 등이다.
| |  |
| 조선 왕조 궁궐에서 행해지던 저주 장면들. 글항아리 제공 |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궁궐에는 온갖 동물의 사체와 뼈가 몰래 묻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정적(政敵)이나 연적(戀敵)을 저주하기 위한 도구이다. 효종 때는 궐내 저주물을 청소하기 위해 3개월에 걸쳐 대대적인 수리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저주의 방법은 다양했다. 주술적 믿음이 강했던 시기인 만큼 저주에는 반드시 주술적 행위가 동반됐다. 그릇속에 벌레를 여러 마리 넣어두고 서로 잡아먹다가 최후까지 살아남은 벌레가 상대를 해칠 힘이 있다고 여겨 이를 갈아서 저주물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고독'(蠱毒)이라 했다. 이 고독을 음식물에 넣어 먹게하는 방식의 저주를 '무고'(巫蠱)라 불렀다. 도마뱀 쥐 고양이 개 돼지 등 동물의 사체를 이용해 저주하는 방식도 무고라 칭했다. '염매'(厭魅)는 염승과 귀매가 합쳐진 말로, '염'은 인형과 화상을 만들어 저주하는 흑주술, '매'는 죽은 영혼을 유도해 해를 끼치는 저주다. 상대를 상징하는 인형을 만들어 눈과 심장 등을 뾰쪽한 것으로 찌르는 저주 행위는 '동종주술'이라 불렀다.
저주 사건의 근원에는 항상 권력이 자리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쟁취의 이면은 이처럼 혼탁하고 불순했다. 당시 저주 행위는 극악무도한 것으로 참형을 면치못했다. 하지만 저주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상대를 해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수건 기자 g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