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다 코지의 영화 '하모니움'은 충격적이다. 이 충격은 몇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데 먼저 영화제목 '하모니움'에서 엿볼 수 있다. 하모니움의 의미인 '풍금'은 페달을 밟아 바람을 일으켜야 연주가 가능한 악기이다. 이때 풍금의 바람은 물리적 바람이 아니라 영화의 내용과 인물의 정서나 느낌으로 변용된다. 이 정서와 느낌은 대위법이나 화성학의 규칙이나 절차(영화 문법)와 무관하게 이루어져, 관객들을 질식하게 만드는 소리를 자아낸다. 그때, 극장의 객석은 풍금이 낼 수 있는 소리 범위를 벗어나, 끔찍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들어낸다.
이 끔찍함은 살인과 치정, 자살 범벅으로 전개된다. 남편과 남편 친구의 비밀, 남편 친구와 아내의 비밀, 남편 친구와 딸의 비밀, 남편 친구 아들과 딸의 존재는 형상화되어 정직하게 화면으로 다 드러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영화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11년 전 남편과 친구의 살해사건, 딸의 사고, 8년 간이라는 공백이 주는 무지로 인해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객석에 머무르게 되고, 관객들은 영화적 고통에 무방비로 대처할 수 없게 된다.
해결되지 않고 영원히 반복되고 영속될 것 같은 '사건'에 영화적 인물들이 내몰릴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영화적 해결에 안정감을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로 머물러 있지 않고 현실로 육박해 들어온다. 영화의 카메라가 철공소와 가족 공간(거실)을 떠나지 않고 배회하고 있는 것은 철저히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 치명적이고 끔찍한 것을 내장한 장소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영화적 인물들이 누리는 안정감은 '죄의식' 혹은 '부채감'을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져 있다. '죄'는 해소되지 않고 반복되고 변형될 뿐만 아니라 영속된다. 남편의 죄는 딸의 '장애'를 통해 해결한 것처럼 생각하거나, 아내의 욕망이 불러온 죄는 '결벽증'과 '환영'으로 나타난다. 죄는 해결되는 법 없이 자리를 바꿀 뿐이며, 심지어 남편의 친구가 사라진 후, 그 자리는 남편의 친구 아들이 철공소 견습공으로 대체된다. 그래서 가족의 안정감은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하모니움'의 카메라는 이 얇은 막을 한꺼풀 벗겨냄으로써, 곪아버린 상처를 흩뿌린다. 그런데도 남편과 아내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함께 지낸다. 딸을 보살펴야 한다는 명목이,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할 남편 친구 야사키를 단죄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야사키의 행적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야사키를 만난다고 해도 부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가족에게 미래는 없다. 더 이상 풍금(하모니움)을 연주하지 못하는 것처럼.
김필남·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