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계절은 언제일까? 봄인가? 나비는 계절도 없이 남녀와 노소 사이를 가리지 않고 도시의 이곳저곳을, 정박되는 법 없이, 스스로 껍질을 벗어 우아하게 거리 위를 나풀거린다. 그러니까 나비는 모든 계절과 어떤 장소도 가리지 않고 서식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2011년 평화의 소녀상이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나비(기금)'는 날개를 적시거나 부러뜨리지 않고 살아 당당하게 제 역사를 알리고 국가폭력과 식민주의, 여성인권에 대해 경고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대만계 캐나다인 티파니 슝 감독의 다큐영화 '나비의 눈물'(The Apology)은 장장 7년에 걸쳐 한국·중국·필리핀 일본군위안부(성노예) 피해자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이 후손에게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며 위안부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는 가족과 친지에게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히는데 평생의 시간이 걸렸다. 중국의 차오 할머니는 일본군의 아이를 낳았고 버렸음을 입양한 딸에게 고백한다.
할머니들의 증언은 일본(인)을 적대하거나 할머니들의 삶을 동정이나 편견을 가지고 보게 하지 않는다. 할머니들의 역사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주지시키며 전쟁, 분단, 여성, 인권, 평화의 문제까지 그 외양을 넓힌다.
2016년 한국의 위안부 생존자는 40명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또 누군가는 사과할 상대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리는지 모른다. 김숨의 소설 '한 명'에서는 마지막 위안부라고 보도되었던 할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미처 증언하지 못했던 '한 명'의 위안부가 더 나타난다. 할머니는 어제 일처럼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살아 있는 한 명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의 증언을 듣는 우리들이 그 아픔에 공감하며 또 다른 한 명이 '되어감'을 발견한다.
24년째 위안부 문제 수요집회가 이어져 오는 것처럼 소녀상과 나비의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역사를 왜곡하고 굴절시키려 해도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할머니에 대한 가해국가의 사과와 반성, 보상 없이 지금 한국·아시아 곳곳의 '나비떼'와 세계 여러 곳에서 날아오르는 평화에 대한 요구와 요청은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필남·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