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수어

말 그대로 이마에 돌이 박힌 물고기라는 뜻. 명나라에서도 동일하게 불러. 이 밖에도 준수어·백상·황화어·춘수 등으로 불리게 됨.

◇ 조기 

석수어의 속명. 사람의 기(氣)를 도우는 고기라는 뜻.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석수어를 한글로 '조긔'라고 쓰기도 했다. 

◇ 굴비

고려 이자겸이 유배시절 말린 조기를 맛 본 후 그 맛이 좋아 왕에게 '굴비'라는 이름을 붙여 올린데서 유래.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뜻 담겨.

추석 차례상에는 문어, 홍어, 북어, 대구, 민어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어물이 올라가지만 대표 주자를 꼽으라면 단연 조기가 아닌가 싶다. 조기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서남지역에서는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 빠져서는 안 될 예물(禮物)이다. 고로 많은 분들이 지난 추석에 조기를 맛보셨을 터. 이번에는 이 대표 예물 물고기, 조기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이마에 돌이 박힌 물고기 

조기는 민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를 아우르는 이름이다. 그러니까 조기는 참조기·보구치·수조기·부세·흑조기 등 여러 어족(魚族)을 합하여 부르는 보통어명(普通魚名)인 것이다. 

예로부터 조기는 석수어(石首魚)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이마에 돌이 박힌 물고기란 뜻이다. 조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마에 다이아몬드 같은 모양의 돌(?)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조선후기 조재삼(趙在三· ?~?)이 편찬한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 같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석수어라는 이름은 15세기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전에 생겼던 것 같다. 또 명나라 이시진(李時珍·1518~1593)이 편찬한 의약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석수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명나라에서도 똑같은 이름으로 동일하게 불렀던 것 같다. 정약전(丁若銓·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석수어를 준수어(蹲水魚)라고 기록하고 그 속명을 조기(曹機)라고 했고, 건석수어(乾石首魚)를 상(鯗) 또는 백상(白鯗)이라고 소개했다. 또 이만영(李晩永)이 1798년(정조 22)에 엮은 '재물보(才物譜)'에는 석수어를 석두어(石頭魚), 황화어(黃花魚)로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또 석수어 가운데 작은 녀석은 준수(蹲水) 또는 춘수(春水)로, 황석어(黃石魚)는 황영(黃靈) 또는 황화어 등으로도 부른다고도 했다. 1789년(정보 13)에 이의봉(李義鳳·1733~1801)이 편찬한 사서 '고금석림(古今釋林)'에는 석수어의 속명이 '조기(助氣)'인데 이는 사람의 기(氣)를 도우는 것이라고 했다. 서유구(徐有榘·1764∼1845)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석수어를 한글로 '조긔'라고 썼다. 우리나라 동해에는 없고 서남해에서만 나는데 곡우(穀雨) 전후에 떼를 지어 남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회유한다고 하고 호남의 칠산, 해서의 연평, 관서의 덕도(德島)에서 성하다고 했다. 조기는 잡은 뒤 소금에 절여 포나 젓갈을 만들었는데,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좋아하며 해족(海族) 중에서 맛이 가장 좋다고도 했다. 

■파시로 불야성을 이룬 연평도 

조기 어획량은 조선시대에도 풍부해 서유구는 전국에서 넘쳤다고 했다. 일제강점기도 마찬가지여서 조기는 조선 내 수산물 중 어획량 4위를 기록할 정도로 풍부한 어족(魚族)이었다. 특히, 전라도에서는 함경도의 명태처럼 조기가 많이 잡혀 '전라도 명태'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남획으로 씨가 말라버린 요즘,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1930년대 당시 조기 어장으로 가장 유명했던 연평도 근해는 성어기가 되면 어선 약 700여 척과 운반선까지 합쳐 약 2000여 척이 운집하고 조기 울음소리로 일대가 난장판으로 변모했다. 이때가 되면 갑작스레 음식점, 여관, 이발소, 파출소 등이 들어서 연평도는 일시에 작은 도시로 탈바꿈했다. 또 술집 작부들도 100여 명 이상이 몰려들어 그야말로 '해중오락장(海中娛樂場)'이 따로 없었다.

잡은 조기는 육지가 아닌 배에서 팔려 나갔다. 당시 어선들은 풍습에 따라 연평도 앞바다에 배를 정박한 뒤 조기를 팔았는데 이렇게 형성된 시장이 파시(波市)였다. 파시의 경기(景氣)는 파시풍(波市風)이라고 불렀는데, 1939년 5월 현재 연평도 파시풍은 어획량은 감소했으나 단가가 2~5할 가량 상승해 전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또 4월 24일 시가는 1동(同) 1000마리에 25~35원 선이었다고 전한다.

연평파시를 통해 팔려 나간 조기는 다시 경성, 평양 등 도시의 시장을 거쳐 사람들 밥상에 올랐다. 사람들은 조기 중에서도 몸이 황백색이라 황조기라고도 부르는 참조기를 많이 찾았다. 조기 중에서 맛이 가장 좋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조기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판매 과정에서 농간을 부려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자들도 생겼다. 이들은 보구치나 몸이 흰빛을 띠는 석수어 몸에 치자 물을 발라 누렇게 한 뒤 참조기라고 속여 팔아 이득을 취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시 신문에서 참조기 살 때 황색이 지저분하거나 더러운 빛깔을 띠고 있는지, 또 손으로 만질 때 치자 물이 묻어나오는지 꼭 확인하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조기의 신이 된 임경업

연평도에는 풍운아 임경업(林慶業·1594~1646)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청나라는 명나라 정복에 앞서 조선을 침입해 굴복시켰다. 하지만 조선은 대의명분과 의리를 중시해 명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못했다. 급기야 조선은 명나라에 독보 스님을 밀사(密使)로 보냈는데, 뒤에 이것이 발각되자 임경업은 명나라로 몸을 피했다. 이때 그가 물과 음식을 구하기 위해 상륙한 섬이 바로 연평도였다. 이후 그는 엄나무로 발을 만들어 조기를 많이 잡은 뒤 목적지로 향했다고 전해진다. 이로부터 연평도에서 조기 어업이 시작되었다고 섬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도 연평도에 거주하는 어부들은 물론이거니와 인근을 지나는 어부들조차도 꼭 임경업 장군 영묘(靈廟)에 제물을 갖추어 참배하고 풍어를 기원한다고 한다. 어부들에게 임경업은 '조기의 신', '풍어의 신'으로 추앙받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절대 굽히지 않으리, 굴비

조기 맛으로 치자면 소금 간을 해 꼬들꼬들 말린 굴비가 으뜸이다. 조기는 통째 말리거나 배를 갈라 말렸는데, 1766년(영조 42)에 유중림(柳重臨·1705~1771)이 펴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의하면 소금에 절여 통째로 말린 것이 배를 갈라 말린 것보다 맛이 좋다고 한다. 

자린고비가 쳐다만 보고도 밥을 먹었을 정도로 굴비 맛은 가히 일품이다. 그런데 이런 굴비 맛에 반한 이가 한 명 더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고려의 대표적 문벌 귀족 이자겸(李資謙·?~1126)이었다. 그는 쿠데타를 통해 인종을 잡아 가두었으나 심복이었던 척준경(拓俊京·?~ 1144)의 배신으로 정주(靜州·전라남도 영광)에 유배되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그의 밥상에 자주 오른 생선이 있었는데, 그 맛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그는 굴비라는 이름을 붙여 개경에 있는 왕에게 이 생선을 올렸다. '屈(굽을 굴)'에 '非(아닐 비)', 이 굴비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비록 유배된 몸이지만 왕에게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이다. 말린 조기에 굴비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비장한 이름이 붙은 건 바로 이 때문이라고 전한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명태가 그러하듯이 조기도 우리 바다를 떠난 지 이미 오래다. 그런 탓에 굴비로 유명한 전라남도 영광에서조차도 국내산 조기로 건조한 굴비는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떠난 조기들을 하루속히 우리 곁으로 불러 모아야만 한다. 그 맛 난 굴비를 자린고비처럼 쳐다만 보며 즐겨서야 되겠는가.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