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 관객이 줄었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굳이 영화의 관객을 자처하지 않고 뉴스의 시청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서사와 이미지로 자극 받는 그런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결코 우리가 원했던 서사와 이미지가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고 최순실이 검찰에 출두한 그날의 상황을 몇몇 언론은 '아수라'라고 칭했다. 아수라의 징표처럼 남겨진 것이 하나 있었는데 최순실의 그 유명한 명품 신발이다. 현장에 남겨진 신발 한 짝의 비현실적 이미지. 그 이미지는 '순데렐라'라는 우스개를 만들어냈다. 그건 요즘 유행하는 표어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게 나라냐?"는 현실정치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 부도덕의 비현실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개탄의 표현이다.
얼마 전 개봉한 한국영화 '아수라'는 반대다. 이 영화는 언뜻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지나칠 정도로 모두 악인이다. 다른 시절에 보았다면 상상력 좋은 만화같다고 평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섬뜩한 점 한가지는 밤의 길거리를 헤매는 사이코패스나 살인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최상위 공직자를 최악의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세태를 마주하고 보니 이 영화를 과연 비현실적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영화 '아수라'의 장면과 현실의 겹쳐 보이는 대목도 있다.'아수라'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황정민이 연기하는 악덕시장 박성배다. 그의 캐릭터를 단박에 설정해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지에 물을 쏟게 되자 박성배는 그걸 말리는 동안 공공장소에서 하의를 전부 벗은 채로 측근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할 일을 한다. 그때 관객은 박성배의 벌거벗은 엉덩이를 보는 것이 매우 불쾌하다. 이유는 그 엉덩이가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수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이 장면의 박성배를 설명하며 '안하무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병우의 눈빛을 보았을 때 박성배의 엉덩이를 떠올렸다. 검찰의 소환에 응하는 과정에서 기자의 질문을 받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기자를 몇 초간 노려본다. 대통령 주변 인물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맡은 민정수석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관하여 "몰랐어도 문제, 알았어도 문제"라는 말이 돌 때다. 하지만 정작 시청자를 불쾌하게 만든 직접적인 요인은 그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판단 이전에 그가 그 눈빛으로 설정해 낸 캐릭터 때문이다.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그는 스스로 안하무인의 캐릭터를 설정했고 시청자는 거기 반응했다.
최순실의 신발 한 짝이 현실을 얼룩지게 한 비현실적 부도덕과 연관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라면, 우병우의 눈빛은 그 비현실적 부도덕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을 법한 또 다른 이미지, 즉 안하무인의 이미지다. 그리고 우린 이미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얼마나 많은 안하무인의 서사로 얼룩져 있는지 충분히 보고 듣지 않았던가.
한 편의 영화가 한껏 상상력을 동원해 아수라를 펼쳐냈지만 사실은 그를 압도할 만한 아수라가 이미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 그리고 그 사실을 입증하는 서사와 이미지들이 시시각각 출몰하는 지금, 현실보다 뒤쳐져 버린 영화는 참으로 난처하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