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 190만 명의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광장에 모여 촛불 집회를 열었다. 많은 시민이 모인 자리답게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진지하고 엄숙한 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 반대의 말들이 더 주목을 모았다. 이른바 패러디 양식의 언어들이다.
대통령 담화문 중 일부인 "이러려고 대통령 됐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는 문장은 이미 전 국민이 애용하는 패러디의 소재다. '대통령'이 들어가는 자리에 그 무엇을 넣어도 말이 되는 이 문장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이후 집단적 박탈감에 빠진 시민들이 각자의 입장과 주장을 풍자적으로 호소할 때마다 등장한다.
혹은 누군가는 청와대가 의약품 비아그라를 구입한 것에서 소재를 얻어 "박근혜는 퇴진하라"라고 외치는 대신 "박근혜는…하야하그라, 비우그라"라고 익살스럽게 쓰고 외친다. 또 누군가는 소를 타고 광장에 등장하는데, 그 소의 이름이 '하야하소'라고 한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에도 상황은 유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유하여 누군가는 '쥐 귀에 경읽기'라고 했다.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라는 그 유명한 문구는 "Boys, Be MB Shut(소년이여, MB 입 좀 막아라)"로 바뀌었다.
그런데 광우병 사태 당시 가장 유명했고 강력했던 패러디는 말이 아니라 영화를 소재로 한 짧은 동영상이었다. 100만 명 이상이 이 동영상을 시청했으므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이름 하여 '뼈의 최후통첩'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다)이다.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방에서 상경하는 고등학생과 그를 막으려는 정부의 갈등이 '뼈의 최후통첩'의 내용이다. 원본은 맷 데이먼이 주연한 '본' 시리즈이고, 맷 데이먼이 촛불 집회 가려는 고등학생이다. 원본 영화의 장면을 이리저리 편집하고 성우의 목소리를 더해 우스꽝스럽지만 호소력 짙은 동영상이 탄생했고, 그걸 본 시민들은 열광했다. 한동안 이 동영상의 존재를 잊었다가 다시금 여기저기서 패러디의 언어들이 웅성거리는 지금 정국에 이르자 문득 떠올리게 됐다. 말하자면 우리가 또 다시 패러디를 권하는 사회를 맞이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패러디는 광장에서의 가장 강력한 표현양식이다. 특히나 광장에 모인 이들의 무기가 총이나 주먹이 아니라 표현 그 자체라고 할 때, 그리고 그들의 분위기가 싸움이 아니라 축제에 가깝다고 할 때, 시민 연회의 이 희극적인 표현 양식은 더 힘을 얻는다.
물론 패러디의 이 웅성거림이 우리가 처한 사회적 불운함 때문에 유발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를 것인가. 하지만 세계라는 드라마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결국 "웃고 있는 민중의 합창(미하일 바흐친)"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역시 패러디 이상 흥미로운 것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정국에 관한 기발한 동영상 패러디를 아직 보지 못했다. 다만 오래 전에 나온 뛰어난 한국영화 한 편을 지금 떠올린다. 2005년에 만들어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다. 뭐랄까. 이 영화는 역사적인 그 밤의 인물과 사건과 대화들을 패러디한다고 해야 할까. 부패한 밀실정치의 역사에 대한 영화적 패러디가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