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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 우렁이 아줌마 /김정애

"사랑하는 사람과 있고 싶어 사람이 되었는데

언젠가부터 거꾸로 가고 있었어. 왜 그랬을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1-01 18:57:15
  •  |   본지 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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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왔다.

방문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방 문이 열렸다 닫히고, 작은방 문이 열렸다 닫히고, 화장실 문이, 냉장고 문이, 옷장 문이, 신발장 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여러 번. 마침내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서너 번. 이제 더 이상 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들썩였던 먼지들이 가만가만 가라앉고, 햇살이 서서히 베란다에 비쳐들었다.

"찰랑 차알랑."

베란다 화분들 틈에 놓인 항아리의 물이 조금 움직이더니 우렁이 한 마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 우렁이는 껍질을 벗고 스르륵 일어섰다. 그러자 꼭 민달팽이 같았던 우렁이 모습이 스르르 바뀌었다. 잠시 후 우렁이는 자그마하고 마른 아줌마로 변했다. 우렁이는 아니, 아줌마는 껍질을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

"야옹! 아줌마!"

장식장 위에 있던 고양이가 거실 바닥으로 사뿐 뛰어내리며 반갑게 소리쳤다.

"아줌마! 용궁에 잘 다녀오셨어요? 아픈 건 어때요? 다 나았어요?"

"근처에도 못 갔어. 바다로 가는 물길은 죄다 막혀있더라. 조그만 틈이라도 찾아보려고 애쓰다가 기운만 더 빠졌어."

"삼일이나 지났는데… 야옹."

아줌마는 고양이를 안아주었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 가르랑거렸다. 하지만 아줌마는 금방 고양이를 내려놓았다.

아줌마는 껍질에 묻은 물기를 정성스럽게 닦았다. 하얀 껍질은 도자기처럼 부드럽고 은은한 빛이 났다.

"그럼 어떡해요? 이제 아줌마는 죽는 거예요?"

"… 당장 죽지는 않겠지."

아줌마는 껍질을 장식장에 넣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렁이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세탁실로 갔다.

"커다란 빨래 산이 생겼네."

아줌마는 세탁기에 빨래 한 무더기를 집어넣고 동작 버튼을 눌렀다. 다음에는 부엌으로 갔다. 싱크대에는 커다란 그릇 산이 생겨 있었다. 아줌마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북적북적 수세미로 그릇을 닦던 아줌마가 갑자기 눈을 감고 싱크대를 꽉 움켜잡았다. 아줌마 얼굴이 핼쑥해지더니 우렁이 모습으로 스르르 바뀌었다.

"아줌마! 괜찮아요?"

고양이가 놀라 소리쳤다.

아줌마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나서 눈을 떴다. 아줌마의 얼굴이 다시 돌아왔다.

"아이고, 어지러워. 서있기도 힘드네."

"아줌마. 일 하지 마세요. 내버려두고 좀 쉬세요."

"어떻게 그래? 나는 밥, 청소, 빨래하기로 약속하고 사람이 된 걸."

"칫! 사람이 뭐 대단한 거라고 그런 약속을 했어요? 아줌마는 바보예요."

"네 말이 맞다. 그 땐 사람이 대단한 줄 알았지 뭐야."

아줌마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줌마는 그릇들을 헹구기 시작했다.

와장창! 털썩!

갑자기 아줌마가 쓰러졌다. 넘어지면서 놓친 그릇이 다른 그릇과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하얗고 날카로운 조각 몇 개가 싱크대 밖까지 튀어나갔다.

"이야옹! 아줌마 왜 그래요? 눈 좀 떠보세요."

고양이는 아줌마 얼굴을 핥았다. 까끌까끌한 혓바닥 때문에 따갑겠지만 아줌마를 깨우자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줌마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럴 때마다 피부가 우렁이처럼 변했다가 돌아오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고양이는 울면서 아줌마를 자꾸 핥았다.

"아줌마! 정신 차려 보세요. 어서 일어나요. 야옹야옹."

고양이는 시장 한 구석에 버려져 있던 때가 생각나서 무서웠다. 엄마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형제들은 더 참지 못하고 집을 벗어나 하나둘 떠나갔다. 고양이는 막내여서 작고 약했다. 엄마를 찾아볼 힘도, 혼자 살아갈 용기도 없었다. 고양이는 울기만 했다. 울 힘도 없을 때쯤, 아줌마가 고양이를 꺼내주었다. 아줌마를 따라온 지 몇 달, 고양이는 이제 겨우 추위와 굶주림과 외로움의 공포를 잊어가고 있었다.

"아줌마! 제가 살려드릴게요. 이번에는 제가 아줌마를 살려드린다고요."

고양이는 아줌마 귀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코도 물었다. 하지만 아줌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안 되겠어."

고양이는 고무장갑을 낀 아줌마 손을 있는 힘껏 물었다.

"아야!"

아줌마가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야?"

아줌마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야옹! 아줌마! 정신이 드세요?"

고양이가 눈물 고인 눈으로 아줌마를 보았다.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앞이 빙빙 돌고 어지러워."

아줌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세수하는 것처럼 얼굴을 문질렀다.

"아줌마! 나랑 같이 병원에 가 봐요. 용궁 가는 길도 막혔으니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

고양이는 아줌마가 동물병원에 데려갔던 걸 생각하며 말했다. 아줌마는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아줌마와 고양이는 집을 나섰다.

"제일 가까운 병원으로 가주세요."

아줌마는 택시에 타자마자 이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택시 아저씨가 시장 근처의 내과의원 앞에 내려주었다.

그 병원 의사는 머리가 새하얀 할아버지였다. 간호사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였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아줌마는 고양이를 진료실까지 안고 들어갔다.

간호사와 의사는 서로 마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줌마는 고양이를 내려놓고 의사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고양이는 아줌마 발치에 꼭 붙어 앉아 있었다.

간호사가 구식 체온계와 혈압계로 체온과 혈압을 재더니 놀란 눈으로 의사를 보았다. 의사는 떨리는 손으로 청진기를 들고 가슴과 배, 등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돋보기를 대고 입 안, 귀 안, 코 안, 눈동자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아주머니. 증세를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의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몹시 추워요. 어지럽고요. 오랫동안 그래왔는데 요즘 들어 견디기 힘들 만큼 심해졌어요. 오늘은 쓰러지기까지 했어요."

아줌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심장 박동이 아주 느립니다. 체온도 보통 사람보다 2도나 낮고 혈압도 몹시 낮군요. 이 상태가 오래 계속되었다면… 아주머니는 원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봐야겠군요."

의사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줌마를 지켜보았다.

"네?"

아줌마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고양이도 깜짝 놀랐다. 그건 식구들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양이도 아줌마가 사흘 전, 용궁을 찾아가면서 말해줘서야 알았다. 고양이는 의사를 노려보며 곧 덤벼들 듯이 몸을 낮췄다.

"아주머니는 아마도… 우렁이였겠지요?"

의사가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줌마에게 말했다. 아줌마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 하지만 사람이 된 지 벌써 20년이나 되었어요. 그런데 요즘 우렁이 모습으로 돌아갈 때가 많아요. 왜 그럴까요?"

아줌마는 서글픈 표정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모든 증상은 체온이 떨어진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체온은 왜 떨어졌을까요?"

"사람들의 온기를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없습니까?"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살갑게 이야기 나눈 지 오래 되었어요."

아줌마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이 고양이로 겨우 버티는 모양입니다만, 고양이만으로는 안 돼요. 가족들과 좀 많이 안고 손도 자주 잡고 그러세요. 웃으면서 이야기도 하고요."

"저, 그런 것 말고, 약이나 주사를 주시면 안 될까요?"

"원래 사람이면 약이나 주사로도 회복이 됩니다. 하지만 아주머니한테는 소용없어요."

의사는 간호사에게 마사지를 해주라고 지시했다. 아줌마가 침대에 눕자 간호사가 손바닥으로 온몸을 문질러 주었다. 아줌마는 눈을 감았다. 아주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한참 만에 마사지가 끝났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훨씬 좋아졌어요. 이런 곳을 알게 되어 다행이에요. 다음에 또 와도 되지요?"

아줌마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미안해요. 우리 병원은 오늘로 문을 닫는답니다."

할머니 간호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대답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해요. 체온 유지를 잘 하세요. 가족이 안 되면 친구들하고라도 손도 잡고 그러세요. 그러면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겁니다."

의사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아줌마를 보았다.

아줌마는 고양이를 꼭 안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돌아서는데 아주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 병원은 언제 생겼지? 본 적이 없는데…."

고양이가 자신 없는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줌마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저씨! 아까 탔던 곳으로 좀 가 주세요."

택시기사는 신나는 표정으로 차를 몰아 탔던 곳에 내려주었다. 그곳은 병원 앞이 아니었다.

"아! 없어. 그새 사라져버렸네. 아아!"

아줌마 눈에서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버지! 어머니! 내 걱정이 되어 오셨나봐. 그 눈빛, 그 손길을 몰라보다니…. 용왕님 허락을 안 받고 몰래 오셨겠지? 틀림없이 벌을 받으실 거야. 아! 다시 뵐 수 있을까?"

아줌마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고양이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엄마와 형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야옹아. 그만 집에 가자."

아줌마가 눈물을 닦고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요금을 많이 받게 되어 그런지 아까보다 더 신 나는 얼굴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줌마는 설거지를 마저 끝냈다. 세탁기에서 빨래도 꺼내 널었다.

"야옹. 또 시작이네요."

고양이가 안타까운 듯 아줌마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아줌마는 일은 더 하지 않았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했다. 그러고는 내내 음악을 들으며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고 싶어서 사람이 되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일했던 건데. 언젠가부터 거꾸로 생각하고 있었어. 왜 그랬을까? 넌 무슨 말인지 알겠니?"

아줌마가 나직나직 중얼거렸다. 고양이는 무슨 말인지 아리송했으나 아줌마가 편안해 보여서 조금 마음을 놓았다.

밤이 되었다. 고양이는 거실장 위에 올라가 엎드려 있었다. 아줌마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식구들을 기다렸다. 체력이 약해 늘 먼저 잠들던 아줌마였다.

현관문이 열렸다. 중학교에 다니는 누나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들어왔다.

"시험 망쳤어."

누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내뱉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힘들었겠구나."

아줌마가 누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누나가 잠자코 있었다. 아줌마가 누나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누나가 그대로 있다가 돌아서더니 아줌마를 안았다. 자그마한 아줌마가 누나 품에 쏙 안겼다.

고양이는 고개를 번쩍 들고 지켜보았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한참 뒤 어깨가 축 처진 고등학생 형이 이어폰을 낀 채 들어왔다.

아줌마가 두 팔을 벌려 형을 맞았다. 형은 얼떨떨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줌마는 살며시 이어폰을 빼고 말했다.

"공부 하느라 힘들었지? 엄마가 충전 좀 해줄게."

아줌마는 형을 안았다. 형은 빙그레 웃으며 아줌마를 마주 안아주었다.

고양이는 아줌마가 쓰러질 때보다 더 놀라운 기분이었다.

밤이 더 깊었다.

아저씨가 잠에 취한 얼굴로 들어왔다. 아저씨는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 던지고, 푸파푸파 요란하게 씻었다. 그리고는 아줌마한테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줌마도 아저씨를 따라 들어갔다.

고양이는 아줌마가 어떻게 할지 몹시 궁금했다. 고양이는 거실장에서 내려와 안방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갔다.

아저씨는 그새 침대에 누워 컥 컥 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아줌마는 그런 아저씨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줌마. 뭐 하세요?"

고양이가 물었다.

"내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던 사람이야. 그런데 몹시 낯설어. 이 사람은 너무 지쳐 보여. 무엇이 이토록 지치게 한 걸까, 그동안 나는 뭘 했을까,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야."

아줌마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고양이는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어쩐지 아줌마가 또다시 우렁이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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