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왜곡은 안 됩니다"
-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 세종대왕·추사 김정희부터
- 영국 화가 그림 속 조선까지
- '우연히' 썼다는 책들엔
- 파고, 빠져 들고, 바로 잡는 등
- 그 시대를 '재현'하고자한
- 문학가의 자세가 드러난다

팩션(Faction)은 역사일까, 문학일까. 역사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을 여러 편 발표한 배유안 동화작가에게 그 우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배유안 동화작가가 부산 수영구 남천동 자택의 서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 작가는 자신의 서재 외에도 집 근처 황령산 편백숲을 거닐며 글쓰기의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박현주 제공

부산 수영구 남천동 해변시장을 지나 작가의 아파트 거실에 들어서자 광안대교가 가로지르는 바다가 펼쳐진다. 책도 읽고 차도 마시는 넓은 테이블이 바다를 향해 자리 잡았다. 서가에는 작가가 학창시절부터 읽어온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다. 집중해 글을 쓰는 서재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 시간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배유안은 2006년 '초정리 편지'로 '창비 좋은 어린이 책' 대상을 받으며 작가가 됐다. '구멍 난 벼루'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 '스프링벅' '뺑덕' '쿠쉬나메' '분황사 우물에는 용이 산다' '서라벌의 꿈' 등을 펴냈고,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창작하면서 아이와 어른이 다 함께 읽는 명작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초정리 편지'의 심사평에서 '어린이 역사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쓴 게 역사소설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러 편 썼는데, 의도한 것이 아니라 우연이었죠."

그렇게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배유안은 자연스럽게 '역사소설관'이 생겼다. "역사 왜곡은 안 됩니다!" 배유안은 힘주어 말했다. "역사의 본질을 잘못 건드려서는 안 돼요. 문학 작품에서 그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허구, 즉 서사가 필요한 거지요. 허구는 지어내야 하지만 진실해야 하고요. 역사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추어의 성실함 같은 거죠."

■역사를 다루는 야무진 손끝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을 새로운 각도에서 그려 엄청난 호응을 얻은 '초정리 편지'를 쓸 때는 종이를 만들고 보급하는 과정을 공부했다. 주인공 장운이가 석수장이로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하려고 돌에 관한 공부도 했다. 이미 인원이 꽉 찬 박물관의 역사강좌에 청강생으로 들어가 서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세종대왕이 강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장면은 작품의 실제 무대인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 근처에 큰 강이 없다는 사실을 안 뒤에 들판과 산을 보는 장면으로 바꾸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무심천은 폭과 깊이까지 조사했다.

지난해 3월 펴낸 '구멍 난 벼루'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의 그림 이야기를 다룬다. "몇 년 전 진도에 강연하러 갔어요. 운림산방에 들러 몇 시간을 보냈죠. 김정희와 허련의 사제관계도 알았고, 그분들의 그림을 보았죠. 자료도 찾고, 그림책도 사서 보며 푹 빠졌어요. 두 사람 이야기를 언젠가는 청소년 책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스승과 제자 관계를 넘어 서로를 키우는 우정을 나누었던 김정희와 허련의 이야기는 이렇게 배유안의 작품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배유안은 자신의 작품 중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를 무척 아낀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9년 식민지 조선을 방문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 다녀가며 조선의 풍경과 백성의 모습을 그렸다. 이 책은 당시의 생활 모습과 풍경을 담은 키스의 그림 위에 배유안이 이야기를 붙여 쓴 것이다. "출판사에서 100년 전 옛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린이들에게 전해주는 책을 기획했는데, 그림을 보자마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전하기 위해 이야기를 찾던 작가의 머릿속에는 그간 읽은 시 구절과 소설 대목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우산 모자를 쓴 할아버지'라는 그림을 보았을 때 김유정의 단편소설 '금 따는 콩밭'이 연상됐다. 이 그림에 붙인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논밭 떼어 팔아 신식 공부시킨 손자 놈은 농사일 싫다더니 뭔 일을 하는지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아들은 누가 금광 찾아다니다가 부자 됐다며 바람이 잔뜩 들어서는 농사일도 건성건성이지."('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 중)

■황령산 편백숲에서 힘을 얻다

그는 그림을 보고 글을 쓸 때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읽었던 많은 문학이 내 안에서 체화되어 다시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역사는 사실을 말해주지만, 그 시대를 재현하지 못합니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시대를 재현하는 건 문학의 몫이고, 문학가의 역할이죠." 이야기는 다시 역사로 돌아왔다. "역사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역사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누구나 찾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합니다. 역사는 살아있는 것이니까요."

배유안은 틈틈이 황령산 편백숲으로 산책하러 간다. 서재에서 이야기를 마친 뒤 그 길을 따라 함께 걸었다. "숲에 가지 않아서 마음이 답답했던 것은 아니지만, 숲길을 걸으면 마음이 탁 트이죠. 걷다 보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그 느낌도 좋아요. 정해놓은 날도 시간도 없고, 그냥 오는 거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쑥 찾기도 하고요." 천천히 편백숲을 걷는 작가는 걸음도, 호흡도 일정했다. 단단한 걸음이었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