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의미'가 주제인 영화
- 툭 터지는 눈물샘을 막지 못할 거예요

작년에 저는 부산광역시 인재개발원에서 강연했습니다. 공무원들과 함께 영화를 본 후 '창조적 상상력(creative imagination)'을 주제로 한 특강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챙겨간 한 영화가 "19금 영화이길 은근히 기대했다"던 그분들을 위해 저는 삶, 즉 'LIFE'가 소재인 영화를 틀었습니다. 이때 LIFE의 각 철자는 Love(사랑), Imagination(상상력), Fun(재미), Evolution(꾸준한 발전)의 조합입니다.
시작하고 10분쯤 지났을까요, 뒷자리 몇 분은 아예 앞에 와 바닥에 앉더군요. 더 잘 보려고 말이지요. 영화가 끝나갈 때쯤엔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분들도 계셨답니다. 19금이길 기대한 그들의 상상이 현실이 되진 못했지만 '종영' 자막이 뜬 뒤엔 감동의 박수가 길게 이어졌답니다. 그때 소개한 영화가 오늘 만나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입니다.

영화는 무비, 즉 movie입니다. '상상력이 춤추며 훨훨 나는 세계'가 무비입니다. 재미 삼아 언어유희 해보자면 무비는 '舞飛'입니다. '꼭 볼 영화'를 'must-see'라고 하는데요, 이번 영화는 '영화적인, 너무나 영화적인' 필람무비(必覽舞飛)입니다. 한 소시민이 상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들며 펼치는 기상천외하고 감동적인 작품이거든요.

	그림=헌즈 작가

주인공은 42세 노총각 월터(벤 스틸러)입니다. 그의 직장 모토는 'Where there is life, there is hope'입니다. 그 뜻은 '삶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이지요. 함의(含意)는 '가능성이 있는 한 삶을 포기해선 안 된다'이고요. 어떤 업종의 회사인 걸까요? 앞의 모토에서 life를 LIFE로 바꾸면 '라이프'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는 뜻이 되지요. 그는 월간지 '라이프(LIFE)'에 다닙니다.

월터는 네거티브 필름 관리자(negative film manager)입니다. 표지용 사진은 물론 책에 들어갈 '결정적' 사진은 다 그의 손을 거칩니다. 그런데 잘 나가던 월터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문제는 그 위기가 할부가 아니고 일시불로 들이닥친다는 점입니다. "종이 잡지 발행은 이번 호로 끝입니다(This month's issue will be our last)." 회사는 인터넷 사업에만 신바람을 불어넣겠다며 그렇게 선언합니다. 결국 그는 해고의 칼바람 앞에 놓입니다. 월터에게 당장 필요한 위로의 단어는 'HOPE'입니다. 'Hold on. Pain ends(끝까지 참아내세요. 시련은 끝날 테니까요)'의 첫 글자들 조합이 '희망(HOPE)'이니까요.

또 하나의 위기가 월터를 덮칩니다. 마지막 호 표지용으로 사진작가 숀(숀 펜)이 보낸 네거티브 필름이 그에게 오다가 배달사고가 난 것입니다. 여러 필름 가운데 그것만 택배 박스에 안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월터는 필름을 수배하기 위해 숀의 소재를 알아내야 합니다. 문제는 아무도 그걸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더 큰 난제는 그에게 ABC가 없다는 점입니다. 기본과 기초를 가리키는 그 ABC 말이지요. 소심남 월터는 특별히 해본 것도 특별히 가본 곳도 없습니다. 그에겐 도전적인 이가 갖추어야 할 ABC가 없습니다. 이때 ABC의 철자는 Adventurous, Brave, Creative를 대표합니다. 모험심이 없고, 용기가 없고, 창의력도 없는 월터입니다. 그도 인정합니다. 과연 그는 '결정적' 필름을 찾아낼까요?

월터의 짝사랑인 직장 동료 셰릴이 그에게 기운을 북돋웁니다. "용기를 내 미래를 향해 떠나보세요.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게 인생이잖아요(Life is about courage and going into the unknown)." 이 명문장은 미국 포스터용 광고문구이기도 하답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영화 곳곳에 배치해놓은 '라이프'의 모토도 월터를 자극합니다. '여행을 떠나 세상을 보세요. 안 보이던 걸 발견하세요. 낯선 이들과 더 가까워지고 서로를 더 잘 알아가세요. 감탄하고 감동하세요. 그것이 우리네 인생의 목적입니다(To see the world, to see behind the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is is the purpose of life).' 이것은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를 위해 창작한 모토입니다.

마침내 월터는 숀이 함께 동봉해 보낸 필름들 속 단서를 따라 그를 찾으러 떠납니다. 하지만 모두가 우려했던 대로 그는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아프가니스탄 등을 경유하면서 무수히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천신만고 끝에 히말라야 설산에서 숀을 찾아내는데요, 기뻐해야할 그는 아연실색합니다. 숀이 필름을 보냈다고 거듭 주장하는 게 아닙니까. "25번 사진은 내 생애 최고입니다. 삶의 정수를 담았어요(Number 25 is my best ever. The quintessence of life)". 그가 편지에서 그렇게 자랑한 필름은 도대체 어디서 증발한 걸까요.

"아름다운 것은 관심받길 원치 않아요(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그렇게 숀이 선문답 같은 화두를 던지는군요. '삶의 정수'가 뭔지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혹시 이것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열심히 일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들'을 가리키는 예찬이진 않을까요.

"당신만큼 제 의도대로 사진의 의미를 잘 살리려 한 이는 없었어요." 숀에게 그런 찬사까지 들은 월터이니 25번 필름을 꼭 찾아내겠지요? 저는 이번엔 '결정적 한 장면'을 노출하지 않기로 합니다. 직접 보시면서 오래간만에 '눈물샘의 둑이 무방비로 툭 터지는 경험'을 한번 해보시면 어떨지요.

※ 닮은꼴 이야기와 감동을 위해 '꼭 읽을 책(must-read)'으로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지은 소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One Woman's Search for Everything Across Italy, India, and Indonesia>를 추천합니다.

외화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