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책 읽어주는 여자] 푹푹 눈 나리는 밤, 꾹꾹 눌러 읽는 백석의 문장들 /강이라

정본 백석 시집 - 백석 지음·고형진 엮음/문학동네/1만3500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2-03 19:31:28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고어·방언, 시의 영역으로 유입
- 의성어·의태어 반복과 나열
- 소리내어 읽을 때 시 맛 으뜸

서울, 성북동 삼각산 자락에 사찰 길상사가 있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스님이 창건하고 입적한 곳으로 알려진 절이지요. 길상사는 제3공화국 시절 요정으로 유명했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당시 대원각 주인이었던 김자야(본명 김영한)는 법정스님을 찾아가 대원각을 불도량으로 만들어주기를 부탁했고, 그 뜻을 높게 산 법정스님이 1997년 길상사를 창건하게 됩니다. 무려 1000억 원을 호가하던 대원각을 조건없이 시주하려는 김자야에게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며 아깝지도 않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다고 합니다.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김자야가 말한 그, 그가 바로 시인 백석입니다.

시인 백석이 함흥 영생고보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강의하는 모습. 1937년 영생고보 졸업앨범에 실린 것을 백석 연구가 송준씨가 공개했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뜨겁게 사랑했으나 평생 맺어지지 못했던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사연을 알고 읽으면 더 아름다운 연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일부입니다. 흰 눈과 흰 당나귀의 색채 이미지 속에 순결한 이상,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시인의 맑은 서정성이 담뿍 담겼습니다.

평안북도 정주 태생인 시인 백석은 고어와 방언을 시어의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시 전반에 토속미를 담습니다. 그리고 의성어와 의태어, 반복과 나열의 구문을 통해 속도감 있는 운율을 획득합니다.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 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이녀'('여우난골족' 중)

영생고보 재직 시절 문예반 학생들과 찍은 사진. 연합뉴스
소리내어 읽을 때의 시맛으로는 백석의 시가 으뜸이라 할 만합니다. 가능하면 홀로인 곳에서 눈으로 먼저 읽고 입으로 다시 읽으며 귀로 들어 봅니다. 특유의 리듬감이 시를 읽고 듣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것입니다. 백석 시에는 일인칭 독백을 통해 자아성찰을 하는 서정시가 다수 있습니다. 시인의 차고 쓸쓸한 독백이 읽는 이의 마음을 가만히 두드릴 때 독자는 각자의 흰 바람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흰 바람벽이 있어' 중)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

백석은 25세 때 유일한 시집 '사슴'(1936년 간행)을 내고 작품 활동을 하던 중 고향 정주에서 해방을 맞습니다. 간혹 백석을 월북 시인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사상이나 체제를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북에서 시인의 행적은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오지로 삼수군 국영협동조합에서 농사 지으며 살았으며 번역을 하고 동시를 발표했다는 기록만 있습니다. 1995년 84세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 보도된 게 마지막입니다.

영원한 모던 보이, 백석은 이제 없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살아 있기에 우리는 그래도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입니다.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 김정은, 중대장대회 지도.. "군사 혁명 다그치자는 것"
  2. 2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모레까지 최대 120㎜ 이상
  3. 3고리 3·4호기 '계속운전 허가' 27일 재심의…승인 여부 촉각
  4. 4면세구역서 주운 담배 반출하다 걸린 직원, 징계 피해 퇴사 후 재입사
  5. 5한전, 사채 한도 19조 초과 위기에 '전기요금 인상론' 재개
  6. 6인천서 노루 사냥 엽총에 밭일하던 80대 부상... "앉아 있어 못 봤다"
  7. 7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7.8원… 전주보다 0.5원 ↓
  8. 8與, ‘혁명가 박정희’ 포럼에 “국힘, 역사 왜곡 정당이냐” 비판
  9. 9[도청도설] if, 손아섭
  10. 10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1. 1[속보] 김정은, 중대장대회 지도.. "군사 혁명 다그치자는 것"
  2. 2與, ‘혁명가 박정희’ 포럼에 “국힘, 역사 왜곡 정당이냐” 비판
  3. 3[속보] 국정원 "김정은 사망설 허위" 국회 정보위에 보고
  4. 4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5. 5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6. 6이 대통령, 최길수 특별감찰관 임명
  7. 7李대통령 지지율 소폭 상승해 40% 회복…부정평가는 50%
  8. 8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9. 9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10. 10‘남북 MDL 상호확인·군통신선 복원’ 정부, 군사회담 北에 제안
  1. 1고리 3·4호기 '계속운전 허가' 27일 재심의…승인 여부 촉각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7.8원… 전주보다 0.5원 ↓
  3. 3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4. 4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5. 5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6. 6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7. 7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8. 8[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9. 9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10. 10"해양 위협하는 발전소 온배수, 5년간 바다에 3700억t 배출"
  1. 1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모레까지 최대 120㎜ 이상
  2. 2면세구역서 주운 담배 반출하다 걸린 직원, 징계 피해 퇴사 후 재입사
  3. 3한전, 사채 한도 19조 초과 위기에 '전기요금 인상론' 재개
  4. 4인천서 노루 사냥 엽총에 밭일하던 80대 부상... "앉아 있어 못 봤다"
  5. 5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6. 6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7. 7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8. 8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9. 9부캉이 머물던 북항서 기름 유출…8시간째 모습 안 보여
  10. 10[속보] 여전히 수로 주변 배회하는 ‘부캉이’…“환경 적응하면 바다로 간다”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5. 5‘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6. 6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7. 7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8. 8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9. 9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10. 10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우리은행
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보리수가 휘감아 지킨 불두, 몰락왕조 영광의 기억
얼굴에 담긴 이야기
물극필반(物極必反)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남인목-웃는 나무
강동윤-Pixelated Oasi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경비원 /박필상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2일 (음 9월 12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1일 (음 9월 11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참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유배객 자암 김구의 눈에 비친 남해의 가을 바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