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에서 노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외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게으름뱅이나 사기꾼, 거지나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자선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평생을 목수로 일한 그는 심장질환으로 일을 쉬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 은퇴하지만, 정부의 복지기관에 신청한 질병 수당이 기각되면서 생활고를 겪으며 복지제도를 둘러싼 갖가지 부조리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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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왼쪽)와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영화사 제공 |
영화에서 그려지는 영국 공무원들의 모습은 현상학자 랠프 험멜이 '관료제의 경험'에서 공무원을 두고 '생김새는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이며 '사람 아닌 사례를 다루고, 정의, 자유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통제와 능률만 생각하고, 국민 봉사기구가 아니라 지배기구'라 한 바를 연상케 한다. 전문의가 아닌 상담사가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판단하고, 항소는 불가능하며,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병든 몸을 끌고 취업교육을 받으러 가야 한다. "디지털, 또 그 소리군. 난 연필 시대 사람이오."라고 하는 노인에게 돌아오는 건, 정해진 양식대로 구직활동의 증빙을 제출하고 인터넷으로 신청하라는 냉담한 반응뿐이다.
'설리:허드슨강의 기적'(2016)에서 승객 155명의 생명을 구한 설리 기장 또한 기막힌 상황과 마주한다. 조종사로서 승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강 위에 비행기를 불시착시켰지만 항공사와 보험사, 미연방 교통안전위원회는 40년 베테랑 기장의 선택보다 회항하면 공항에 착륙할 수 있었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더 신뢰한다. 청문회장에서 시뮬레이션을 본 설리는 인간이라면 갑자기 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기계처럼 바로 회항을 결정할 수 없다는 허점을 지적한다. 이에 현실에 맞게 시뮬레이션 조건을 조정했을 때 비행기가 도심에 추락하는 더 큰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란 결과가 나오고, 위원회는 설리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한다.
켄 로치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각기 다른 소재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두 작품은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인간을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이 얼마나 비정한 괴물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행정의 편의와 효율만을 중시하는 공무원의 기계적인 대응은 복지의 손길이 필요한 노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이윤과 손실만 따지는 항공사의 계산에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황과 위기에 처한 인간의 반응이 들어있지 않았다.
관료제와 자본주의. 양자 모두 지극히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야 할 합리성이 도리어 인간을 도구로 삼는 문명의 아이러니. 효율과 이윤을 기준으로 도구화한 합리적 이성이 얼마나 잔인하게 인간을 소외시키고 배제할 수 있는 지를 두 영화는 생생히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실종된 합리성은 괴물이 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부르짖은 다니엘 블레이크의 외침이 우리 시대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