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괴물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2-16 19:24:23
  •  |  본지 21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에서 노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외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게으름뱅이나 사기꾼, 거지나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자선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평생을 목수로 일한 그는 심장질환으로 일을 쉬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 은퇴하지만, 정부의 복지기관에 신청한 질병 수당이 기각되면서 생활고를 겪으며 복지제도를 둘러싼 갖가지 부조리에 직면하게 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왼쪽)와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영화사 제공
영화에서 그려지는 영국 공무원들의 모습은 현상학자 랠프 험멜이 '관료제의 경험'에서 공무원을 두고 '생김새는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이며 '사람 아닌 사례를 다루고, 정의, 자유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통제와 능률만 생각하고, 국민 봉사기구가 아니라 지배기구'라 한 바를 연상케 한다. 전문의가 아닌 상담사가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판단하고, 항소는 불가능하며,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병든 몸을 끌고 취업교육을 받으러 가야 한다. "디지털, 또 그 소리군. 난 연필 시대 사람이오."라고 하는 노인에게 돌아오는 건, 정해진 양식대로 구직활동의 증빙을 제출하고 인터넷으로 신청하라는 냉담한 반응뿐이다.

'설리:허드슨강의 기적'(2016)에서 승객 155명의 생명을 구한 설리 기장 또한 기막힌 상황과 마주한다. 조종사로서 승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강 위에 비행기를 불시착시켰지만 항공사와 보험사, 미연방 교통안전위원회는 40년 베테랑 기장의 선택보다 회항하면 공항에 착륙할 수 있었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더 신뢰한다. 청문회장에서 시뮬레이션을 본 설리는 인간이라면 갑자기 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기계처럼 바로 회항을 결정할 수 없다는 허점을 지적한다. 이에 현실에 맞게 시뮬레이션 조건을 조정했을 때 비행기가 도심에 추락하는 더 큰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란 결과가 나오고, 위원회는 설리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한다.

켄 로치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각기 다른 소재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두 작품은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인간을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이 얼마나 비정한 괴물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행정의 편의와 효율만을 중시하는 공무원의 기계적인 대응은 복지의 손길이 필요한 노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이윤과 손실만 따지는 항공사의 계산에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황과 위기에 처한 인간의 반응이 들어있지 않았다.

관료제와 자본주의. 양자 모두 지극히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야 할 합리성이 도리어 인간을 도구로 삼는 문명의 아이러니. 효율과 이윤을 기준으로 도구화한 합리적 이성이 얼마나 잔인하게 인간을 소외시키고 배제할 수 있는 지를 두 영화는 생생히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실종된 합리성은 괴물이 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부르짖은 다니엘 블레이크의 외침이 우리 시대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영화평론가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구포국수
조봉권의 문화현장
학계·예술계, 후속세대 아껴라
국제시단 [전체보기]
꽃나무의 속내 -서상만
그리움의 입덧 /박미정
글 한 줄 그림 한 장 [전체보기]
누구나 한 번은 저 강을 건너야 하리
적대에서 공감으로, 전선에서 연대로
리뷰 [전체보기]
불 꺼진 무대가 물었다, 당신은 고독하지 않냐고
방송가 [전체보기]
매끄러운 미끄럼방지 포장도로 실태
G20 정상회의 미국 빈자리 노리는 독일·중국
새 책 [전체보기]
별을 지키는 아이들(김태호 지음) 外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비열한 인간세계의 먹이사슬
고령화가 내몬 노후파산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꿈속의 고향-조광수 作
채색된 실내-정보경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동물 목숨을 거두는 저승사자 外
아티스트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먹 /정용국
낮잠-지슬리*19 /정희경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11기 맥심배 입신 최강전 8강전
제2기 비씨카드배 본선 16강전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리얼'이 남긴 것
JTBC 효리네 민박·비긴어게인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시대극의 유행
20년 시간 넘어 문화 현상이 된 '해리포터' 시리즈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명절 친척 잔소리 폭격에 고르고 고른 한 마디 "뿡" /박진명
뿌리 내린 식물은 시들 때까지 자랄 뿐 헤매지 않는다 /정광모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할아버지는 왜 평생 귓병에 시달리시는 걸까 /안덕자
요가의 본질은 신체 단련 아닌 정신 수양 /강이라
현장 톡·톡 [전체보기]
팻 배글리 “만평 보면서 한국 정치상황 더 궁금해져”
"일광에 동남권 문화사랑방 생겼다" 예술인들 환영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7년 7월 21일
묘수풀이 - 2017년 7월 20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제19회 부산시장배 시민바둑대회 부산아마최강부
제19회 부산시장배 시민바둑대회 부산아마최강부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전체보기]
齊家在修身
治氣養心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