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인디고잉 등 문예지 혜택
- 갈등 컸던 영진위 사업 개편

- "근본 대책·고민 흔적 없어"
- 예술·영화계 반응은 냉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재발 방지 대책을 예술계 쪽에 내놓으며 '갈등 봉합'에 나섰다. 하지만 지역 예술계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근본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 예술인들이 지난해 11월 부산 서면 거리에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를 규탄하는 '먼저 춤 궐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가 장영식 제공

문체부는 지난 9일 '문화예술정책의 공정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내놓은 후속 대책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예술인을 지원에서 배제하는 식의 치졸한 보복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한다는 취지다. ▷부당하게 폐지되거나 변칙으로 개편된 사업 복원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심의 과정 투명성 제도화와 외부 개입 원천 차단 ▷예술지원기관 자율성·독립성 보장과 합의제 행정기관 위상 재정립 ▷예술가 권익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 ▷문체부 공무원 행동강령 개정 등이다.

문화예술계가 당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은 '부당하게 폐지 혹은 개편된 사업의 복원'이다. 문체부는 문학 연극 영화에서 폐지된 사업 중 ▷우수 문예지 발간(5억 원) ▷공연장 대관료 지원(15억 원) ▷특성화 공연장 육성(10억 원)을 곧바로 복원하고, ▷도서관 상주 작가 지원(10억 원) ▷지역 문학관 활성화(10억 원) ▷영세 출판사 지원(13억 원) ▷피해 출판서 도서 우선 구매(12억 원) ▷공연예술 유통지원(10억 원) 등을 새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85억 원이다. 이중 우수 문예지 발간 지원은 '오늘의 문예비평' '안녕 광안리' '인디고잉' 등 부산의 여러 문예지가 혜택을 보다가 갑자기 없어져 직·간접으로 타격을 입은 분야다. '국정 농단' 특검 수사 당시 정부가 세월호 사태를 다룬 문예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 위해 이 사업을 없앤 것으로 드러났다.

문체부는 갈등과 반발이 특히 심했던 영화계와 관계 복원을 위해 늦어도 다음 달까지 영진위 사업을 개편한다.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과 지역 독립영화관 건립 지원, 글로벌 국제영화제 육성 지원이 주요 대상이다.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박정후 사무관은 "영진위 사업 심사에 정부나 외부 입김이 아예 들어갈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국비 삭감 사태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지역 문화예술계는 문체부 대책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부당하게 없어졌거나 개편된 사업을 복구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간 잘못을 만회할 만큼 치열한 고민과 대안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오늘의 문예비평' 손남훈 편집주간은 "지역의 작은 잡지가 지원받을 길이 다시 열린 것은 다행이지만, 원래 하던 사업을 되살린 것에 불과해 발전방향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더 냉담하다. 한 예술영화관 관계자는 "영진위가 예술영화관 지원을 없애고, 개별 영화 지원으로 방법을 바꾸면서 예술영화관은 극심히 위축됐다. 상영 영화 선택 폭도 줄었다. 그런데도 최근 진행된 영진위 간담회 등을 보면 당장 욕먹지 않을 정도로 사업을 수정하는 데 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손민식 사무국장 역시 "영진위가 최근 영화 지원사업 방식을 바꾼 뒤 독립영화가 설 자리가 좁아졌다. 근본적 통찰과 전환 없이 문제가 된 사업만 손보고 마는 식이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큰 피해자인 BIFF는 올해 영화제 지원사업 예산이 지난해보다 줄어 국비 증액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BIFF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제 지원의 틀을 바꿔 규모에 맞게 차등 지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틀 자체의 전환을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민예총 반민순 사무처장은 "문체부 후속 대책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 같다. 문체부의 변화 의지를 예술 현장에 분명히 보여주는 게 먼저다"고 지적했다.

◇ 문화예술정책의 공정성 제고 방안

▶부당하게 폐지되거나 변칙으로 개편된 사업 복원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심의 과정 투명성 제도화와 외부 개입 원천 차단

▶예술지원기관 자율성·독립성 보장과 합의제 행정기관 위상 재정립

▶예술가 권익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

▶문체부 공무원 행동강령 개정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