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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문화현장 <27> 문우당서점 62년 전통 잇는 조준형 대표

책이 좋아 도서관에 살던 소년, 한국 서점의 역사 쓰다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7-03-16 18:57:5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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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시절부터 학교 도서부
- 가장 좋았던 일은 책 분류
- 공고 진학 뒤 공대 합격했지만
- 진짜 원했던 일은 서점 직원

- 1988년 문우당 취업 꿈 이뤘지만
- 2000년대 온라인 서점 광풍
- 매출 급감하자 규모 줄여 이전
- 창업주 급기야 폐업 결심까지

- "제가 살려보겠다" 대표직 자청
- 국내 最古 서점 지켜내
- 해사도서 특화로 활로 찾아

- -"문우당 누군가 지켜야 할 역사
- 뒷골목 옮기더라도 문 연다"

소년은 부산 부산진구 서면중학교를 다녔다. 수업이 끝나면 그때부터 학교 도서실에 앉았다. "도서실 문 닫을 때까지 책을 보는 거죠." 지금 기억으로는 도서실에 있던 책은 거의 다 읽었다. '공부는 잘하지만, 집안 형편은 좀 어려운' 아이들이 많이 가던 부산공고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아예 도서부에 들어버렸다. 같은 일과가 반복됐다. 오후 7, 8시까지 책을 읽다 집에 간 날이 많았다. 하루에 몇 권씩 읽던 소년 시대였다.
   
문우당서점 조준형 대표가 책·지도·지구본이 가득한 매장에서 1955년부터 이어져 온 '문우당'의 전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지금은 책마다 바코드가 있지만, 그때는 그걸 직접 분류하고 손으로 써서 책에 붙여야 했거든요. 도서부 학생 가운데 누군가 그걸 해야 했는데, 제가 자청했죠.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한국문학은 800번, 그중 소설은 813, 근대소설은 813.6…. 생각해보니, 그게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어요. 책과 함께 사는 거요."

부산 중구 남포동 큰길가의 남포문고와 대동약국 사이에 자리 잡은 165㎡(약 50평) 넓이의 크지 않은 책방, 문우당서점 조준형(52)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책의 매력에 더 깊이 빠진 부산공고 도서부 시절이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그때 받은 도서관 이용 우수상 이런 게 집에 수십장 굴러다녀요."

책과 사랑에 빠진 소년은 동아대 금속공학과에 83학번으로 들어갔다. 집안 상황과 전공, 미래의 삶을 생각한 결정이었다. 언뜻 보면, 책과는 멀어지는 갈림길에 서버리게 된 셈이다. "그런데 대학 다닐 때도, 군대 갔을 때도 '앞으로 뭘 하면서 살지' 하고 자문할 때마다 막연하게 '서점에서 일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거든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 공장에서 일했는데 회사가 부도 난 바람에 두 달 치 월급을 못 받고 있던 때였다. 마침내 운명이 그를 찾아왔다. 우연히, 신문에 난 '문우당서점 사람 모집' 광고를 그는 봤다.

■도서관 소년 '책은 내 운명'

   
1990년대 중반 부산 중구 남포동 문우당 서점 외관(위)과 손님들로 가득한 매장. 문우당 서점 제공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였는데, 예비군 훈련 갔다가 군복 입은 채로 미화당백화점 앞 시위대를 뚫고 면접을 보러 갔죠." 1988년이었다.

문우당서점은 1955년 김용근(84) 씨가 부산 범내골에서 작은 서점으로 창업했다. 1970년대 남포동으로 옮겨와 16㎡(약 5평) 넓이의 책방을 연 뒤, 조금씩 성장해 어느덧 부산을 대표하는 서점이 됐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길 건너 자갈치시장 쪽 건물을 매입해 서점을 옮겼을 때는 매장 총 넓이가 1322㎡(약 400평)에 달했다. 문우당은 당시 부산의 문화 브랜드였다.

"2000년대 초 한국의 서점과 출판은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 뒤로 독서 인구는 줄고, 온라인의 거센 도전이 시작됐죠." 2010년 10월 21일, 문우당은 매출 감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겠다고 발표한다. 단, 여러 가지 정리할 것이 많아 서점 영업은 10월 31일까지 지속한다고 밝혔다. '문우당 55년 역사'가 멈춘다고 모두 생각했다.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창업자 어르신과 가족 그리고 직원들이 많이 고민했어요. 55년 역사를 여기서 멈출 거냐? 그런 논의를 거치면서 제가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12월 1일 직원 출신인 제가 대표가 됐고, 이듬해 4월 15일 지금 자리로 옮겨왔죠.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 과정에서 문우당은 하루도 정상 영업을 멈춘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2010년 10월 21일 폐업 방침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폐업한 적은 하루도 없어요. 줄곧 서점 문을 열었죠."

   
2000년 길건너 자갈치 시장 방면으로 이전했을 당시의 서점 건물. 문우당은 2011년 규모를 줄여 다시 길건너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여기서 짚을 사안이 나온다. 1968년 창업한 부산 서면 영광도서는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서점'으로 꼽히며, 영광도서도 그렇게 알리고 있다. 영광도서는 폐업 결정을 내리거나 공표한 바 없고, 경영진이 바뀐 적 없이, 초대형 서점의 규모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역사를 이어가고 있으므로 분명 나름의 자격과 근거가 있다.

그런데 '역사'만 놓고 보자면, 문우당이 있다. 경영진이 바뀌고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문우당의 역사가 실질적으로 단절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짚고 넘어갈 사안이다.

■해사도서 출판 등으로 활로 연다

   
고객이 문우당에서 지도를 고르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또 있다. '조준형의 책과 인생'이다. 그의 인생은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로 요약된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그 힘든 일을 그는 즐겁게 기꺼이 맡아왔다. 조 대표는 "문우당에서 평생 일하면서 창업자 김용근 선생을 깊이 존경하게 됐고, 책이 내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 그 모든 것이 담긴 문우당의 역사를 내 손으로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였다.

사람들이 책을 덜 읽고 '온라인'이 독서시장을 쓸어버린 상황이지만 문우당서점이 '방어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다듬는 데 힘쓴다. 현재의 문우당서점을 부산의 문화자산으로 볼 근거는 분명하다. "해사도서 전문서점, 지도와 지구본 전문 매장, 부산의 책 지킴이." 이 세 가지가 '조준형의 문우당'이 갖는 선명한 특징이다. 여기에도 그의 인생철학이 스며 있다.

"해사·해양도서는 문우당이 워낙 오랜 세월에 걸쳐 특화한 영역이고 전문성이 있습니다. 문우당에서 못 구하는 해사 전문도서는 다른 데서도 못 구할 확률이 지극히 높죠." 해사·해양도서는 특화한 영역이라 그렇다 치자. 인터넷의 기술력이 끝없이 높아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부문이 지도와 지구본 판매다. "지도가 안 팔려 2년 전쯤 지도 판매를 접을까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접으면, 부산에선 지도를 구할 데가 없어요."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계속하기로 했다.

문우당에는 '부산의 책 서가'가 따로 있다. 부산 필자들이 쓴 책은 시장이 좁고 잘 안 팔린다. 그런데 왜? 답은 "부산의 서점이 가져야 할 의무라고 봅니다"였다. 그는 책 기부와 공연 후원 등 문화 나눔 활동도 꾸준히 한다."누군가 해야 하니까."

문우당서점의 경영은 사실 어렵다. 책은 잘 안 팔린다. 그래도 조 대표는 주눅들지 않는다. "2012년 해사도서를 전문으로 내는 해광출판사를 자회사로 차려 해양·해사도서를 펴내는데 호응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22종이 전국에 유통되고 있죠. 이 부문에 기대를 겁니다." 그가 말했다. "만약 지금의 문우당마저 잘 안 된다면? 어느 작은 뒷골목이라도 다시 찾아가서 열면 됩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문우당이니까요."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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