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은 소우주다." 일본 도쿄에서 라멘집을 연 미국인 아이번 오킨은 라멘을 '소우주'라고 했다. 서양 요리에서 수프, 전채, 메인 디시 등으로 분리되는 식사를 그릇 하나에 담아낸 격이기 때문이다. 라멘의 사회생활은 이 '요리를 농축한 우주'에 담긴 일본을 하나씩 들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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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시에서 유명한 시오(소금)라멘. |
저자 하야미즈 겐로는 "역사, 기억, 세계화, 내셔널리즘, 중일관계, 미일관계 등 모든 소재가 마치 어패류 육수와 육류 육수처럼 잘 섞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라멘"이라 말한다.
라멘의 사회생활은 맛있는 라멘집 정보를 전하는 책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라멘이 어떻게 보급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변화상을 통해 일본의 문화와 미디어, 경제, 사회, 역사를 짚는다.
중국에서 유입된 라멘은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굶주림에 시달리던 일본인의 위장을 달랬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국의 원조 밀가루였다. 미국 정부는 과잉 생산된 밀을 처리하기 위해 원조라는 이름으로 일본과 한국, 대만 등에 팔아치웠는데 일본에서는 라멘이 빵을 이기고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점차 라멘은 세대마다 가난과 추위를 이겨내는 추억을 심는 친숙한 음식이 됐다.
라멘이 한국의 라면과 다른 점은 인스턴트에 머물지 않고 지역마다 특색있는 수많은 라멘으로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역마다 가게마다 각양각색 라멘 맛을 볼 수 있어 이를 맛보려는 세계인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일본의 한 라멘 박물관은 라멘이 "지역의 기후, 풍토, 지혜와 섞여 지역에 뿌리내렸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날조된 신화라며 진짜 이유는 '국토 개발 정책'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와 산업을 지역으로 분산하기 위해 도로 건설을 시작했는데, 관광 레저 붐이 맞물려 지역 특색의 라면 개발에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요즘의 라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라면집 인테리어가 점점 전통의 일본식으로 바뀌고, 주방에서 앞치마 대신 사무에(장인 작업복)를 입는 모습에서 일본 지상주의, 내셔널리즘이 깔려있다고 분석한다. '라멘이 무엇인가'를 통해 '일본이란 무엇인가'를 보고 우리와 비교도 하게 돼 흥미롭다.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