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망명 중인 대시인 네루다와
- 그의 전속 '임시직' 우편배달부
- "선생님, 도대체 은유가 뭡니까"
- 이 한마디로 시작된 시 창작교실
- 그리고 지중해 바다처럼 아름다운 우정

- 마리오의 인생을 바꾼 말
- "온 세상은 다 특별한 뭔가의 은유지"


"생각하고 상상하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할까요?"

강연할 때 그렇게 질문하면 청중이 '입을 모아' 대답합니다. 뇌! 정답일까요? 아닙니다. '언어'입니다.

극영화 '아이리스'의 실존 모델인 아이리스 머독은 우리가 왜 언어 실력을 키워야 하는지를 무척 강조한 작가입니다. "왜 언어가 중요합니까?" 하고 묻는 이들에게 작가는 반문했습니다. "인간에게 언어가 없다면 어떻게 생각하죠(If one doesn't have words, how does one think)?"

그림=헌즈 작가

까치야

너는 알까

직장에서 아버지는

구두 뒤꿈치가 왜 안 닳는지.



저의 졸시 '까치발'의 전문입니다. 이번 '결정적 한 장면'을 위해 저는 '일 포스티노'를 선정했습니다. 생각과 상상을 시로 표현하고 싶을 때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도구의 하나인 '은유'의 멋과 맛을 함께 감상하고 싶어 여러분을 이탈리아의 외딴 섬마을에 초대합니다.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일 포스티노'의 촬영지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일 겁니다, 아직 가보진 못 했지만 운치와 정취가 거길 퍽 닮았을 것 같은 해운대 달맞이나 청사포에서 저는 그곳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보곤 한답니다.

여기, 한 청년이 있습니다. '단테'는 알아도 '알리기에리'는 누군지 모르겠다는 이탈리아 섬마을 총각 마리오입니다. 대다수가 문맹자인 외딴 섬에서 그나마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찌그러진 개밥그릇처럼 남루한 자전거나마 그게 있는 그는 덜컥 우편배달부로 뽑힙니다.

면접 날 마리오의 상사는 그의 일자리가 임시직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수취인이 한 명뿐이야." 세상에나, 그 수취인이 놀랍게도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마리오는 망명해온 네루다가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만 그에게 온 우편물을 배달할 수 있습니다.

급여라 해봤자 '일주일에 영화나 한 편 볼 수 있는' 푼돈이지만 마리오가 그에게 매력을 느끼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연애시도 잘 짓는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때마침 짝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는데도 그녀 앞에만 서면 '우두커니 선 채로 입을 벌리고도 말을 못하는, 볼이 빨개진 우체통처럼' 벙어리가 되는 청년은 네루다에게 '가르침'을 받기로 합니다.

베아트리체를 사로잡기 위한 '개인교습-1교시'는 '메타포(metaphor, 은유) 공부'입니다. "은유가 뭔데요?" 하고 묻는 제자에게 대시인은 질문을 해 이해를 돕습니다. "여보게, '하늘이 운다(The sky weeps)'가 무슨 뜻일까?" 제자가 뚜벅 대답합니다. "그건 '비가 내린다(It is raining)'입니다." 스승이 흐뭇해합니다.

만약 마리오가 '단테'가 누군지 알고 '알리기에리'도 누군지 아는, 즉 '신곡'을 쓴 이가 '단테 알리기에리'라는 걸 잘 아는 제자였다면 네루다는 셰익스피어의 '좋을 대로 하세요' 가운데 한 대목을 꺼내 은유를 설명했을지도, 혹시 모르겠군요.



온 세상은 무대이고

All the world's a stage,

모든 사람은 배우에 불과하다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저마다 등장, 퇴장할 때가 있고(…)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온 세상은 다 특별한 뭔가의 은유이지(The whole world is a metaphor for something else)." 그렇게 대시인에게 은유를 배운 마리오는 실전에 들어갑니다. "그대 미소는 그대 얼굴에 나비처럼 번져요(Your smile spreads like a butterfly)." 마리오의 심장도 날갯짓처럼 펄떡였던 걸까요, 베아트리체의 미소에 눈부셔하며 그가 지은 첫 은유 문장은 단박에 그녀를 사로잡습니다.

'개인교습-2교시'는 '시 쓰기'입니다. 자신감이 생긴 마리오는 이제 시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되려는 이유는 간절하도록 분명합니다. "제가 시를 지을 줄 알면 그녀를 사로잡을 수 있을 거잖아요(With poetry I could make her fall for me)."

과연 마리오는 시인이 될까요? 됩니다. '우표를 붙이는데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법'까지도 터득했으니까요. 시를 짓던 대시인이 "고기잡이 그물에 어울리는 형용사가 필요해" 라고 하자 그는 '서글프다'는 단어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마리오가 시작(詩作)의 완성도를 높여갈 무렵 베아트리체와의 사랑도 결실을 맺습니다. 둘의 결혼식 날 네루다가 자유의 몸이 됩니다. 스승이 떠난 후 마리오는 시 창작을 위한 '연애의 대상'을 한 여인에게서 민중에게로 확장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도구인 언어의 힘을 그는 잘 익혔으니까요.

대단원에 이르러, 네루다가 보고 싶은 마리오는 섬마을이 그립다며 소식을 전해온 스승이자 친구를 위해 섬마을의 아름다운 소리를 채집해 보내기로 합니다. 자맥질하는 파도 소리, 절벽에 등을 비비는 바람 소리, 나무의 머릿결을 애무하는 바람 소리, 고기잡이 그물이 내는 서글픈 소리, 별들이 지상의 소식이 궁금해 소라껍질에 대고 귀를 쫑긋거리는 소리,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의 박동 소리…!

눈을 감고서 '그리움을 은유하는 그 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면 여러분도 네루다가 제자에게 한 말을 떠올리게 되지 않는지요. "온 세상은 다 특별한 뭔가의 은유이지."


★네루다 배역은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 역을 맡은 필립 느와레입니다. 꼭 읽어볼 책으로 영화의 원작 소설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추천합니다.


외화번역가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