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기와 치즈를 한꺼번에
- 입안에 넣고 씹은 레미가
- 감탄사를 터뜨리며 하는 말
- "다른 두 맛을 결합하니까
- 새로운 맛이 창조된거야"

- 꼬마 쥐가 이끄는 맛의 성찬
- 그 즐거움을 따라가다보면
- 픽사의 혁신에 맞닥뜨린다

"우리가 무엇을 생산할 수 있습니까(What can we produce)?"

	그림=헌즈 작가

99%의 최고경영자는 신제품 개발 단계에서 그렇게 물으며 회의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1%에 속했던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게 뭡니까(What do we want)?"

자기들이 갖고 싶은 걸 만들어내면 그게 히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녹아든 질문이지요. 동시에 '그'는 창의력이 뛰어났고, 남들이 못 만드는 걸 만들려는 도전정신도 뛰어났다는 걸 내비친 질문 방식이지요.

'그'는 스티브 잡스입니다. 세계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 픽사(PIXAR)의 창업주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30대 이상 대한민국 성인의 수는 '충격적이게도' 매우 적습니다. 픽사가 1986년에 창립됐고, 놀랍도록 혁신적인 첫 작품 '토이 스토리'가 1995년에 세상에 나왔음에도 말이지요.

이야기 물꼬를 잠깐 다른 데로 텄다가 되돌아오기로 합니다. VR, 즉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체험용 특수 안경을 쓴 타조 한 마리가 냅다 뛰기 시작합니다. 비상(飛翔)을 꿈꾸는 것이지요. 결과는? 실패입니다. 이번엔 타조가 안경을 벗고서 뜁니다. 결과는? 성공입니다. 솟구쳐 훨훨 날자 구경꾼 타조들은 입이 쩍 벌어집니다.

뒤따르는 자막은 가히 화룡점정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못 만드는 것을 만듭니다(We make what can't be made). 그래서 당신은 누구도 못 해내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So you can do what can't be done). 당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보십시오(Do what you can't).'

앞의 첫 문장에서, '이' 기업이 뒤만 따라가는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고 앞서나가는 '선도자(First Mover)'라는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는지요. '이' 기업은 삼성전자입니다. '비상하는 타조'는 갤럭시 S8 스마트폰을 위한 글로벌 광고 속 모델입니다.

잡스의 질문 방식과 삼성전자 광고의 메시지의 핵심이 같습니다. 재미 삼아 그걸 공식으로 만들었습니다. 'FM=f(CI)'입니다. FM은 선도자(First Mover), C는 창의력(Creativity), I는 혁신능력(Innovation)입니다. 창의력은 '새로운 것을 고안하는 능력'입니다. 혁신능력은 '새로운 것을 실행해 성과를 내는 능력'입니다. 두 능력 다 남달리 뛰어난 이나 브랜드는 선도자입니다.

창의력과 기술적 혁신능력을 뽐내는 창작물의 하나가 장편 애니메이션 '라따뚜이(Ratatouille)'입니다. 라따뚜이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전통 스튜 요리이고, 이름의 첫 세 글자는 쥐(rat)입니다. 인간의 입, 즉 '마우스(mouth)'를 즐겁게 하는 요리 소재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픽사는 컴퓨터 '마우스(mouse)'를 사용해 쥐, 즉 매력적인 '마우스(mouse)' 캐릭터를 탄생시켰지요.

주인공 쥐 레미는 절대 미각의 소유자이고 책 읽기도 좋아합니다. 그가 요즘 빠져 읽는 책은 '당신도 요리사가 될 수 있다(Anyone Can Cook)'입니다. 책을 쓴 이는 구스또인데요, 자기 이름을 내건 유명 식당의 주방장이었건만 어느 비평가가 그의 요리를 악의적으로 혹평하자 충격을 받아 사망한 인물입니다.

파리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인 레미는 이렇게 혼잣말하곤 합니다. "If you are what you eat, then I only want to eat the good stuff." 명구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를 변주한 대사이지요.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면 난 맛있는 것만 먹을 테야'라는 뜻이고요. 레미는 구스또의 옛 직원들이 명맥만 겨우 이어가는 식당에 '감히' 잠입합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도전하는 자만이 훌륭한 이가 될 수 있다(Only the fearless can be great)'고 믿는 그이기에…!

레미와 단짝인 인간 주인공은 파스타 재료로도 유명한 이름을 가졌습니다. 링귀니입니다. 구스또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이 청년은 구스또의 혈육입니다. 레미는 그의 요리사용 모자 속에 숨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밀고 당기고 휘저으며 요리법을 지휘합니다. 그들이 협업해 내놓는 스페셜 요리들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구스또 식당이 옛 명성을 되찾게 되는 걸까요?

새 주방장 스키너는 구스또의 이름을 앞세운 냉동식품 사업에만 열을 올리는 얼치기입니다. 그의 야심은 식당을 홀랑 집어삼키는 것, 그런데 링귀니가 구스또의 상속자일 가능성이 부각되자 그를 극도로 경계합니다. 눈엣가시를 제거하고 싶은 스키너는 변호사에게 부탁해 DNA 검사를 의뢰합니다. 아뿔싸, 변호사가 채취한 링귀니의 머리카락에서 생쥐의 유전자가 발견되는데…!

영화 도입부에서 레미는 딸기와 치즈를 입에 털어 넣고서 오묘하게 섞이는 맛을 음미합니다. 저는 그걸 결정적 한 장면으로 꼽고 싶습니다. 곧이어 레미는 '유레카!'에 버금가는(?!) 탄성을 터뜨립니다. "각각 다른 두 맛을 결합하니까 새로운 맛이 창조된 거야(Combine one flavor with another and something new was created)." 이 대사를 통해 잡스는 관객에게 '융합'의 개념과 위력을 강조하려 했을 것입니다.

픽사가 만드는 영화는 다 깡충깡충 뛰어나온 꼬마 램프가 PIXAR의 철자들 가운데 'I'를 짜부라트리면 영화가 시작되지요. 이 'I'가 저는 아이디어(Idea), 상상력(Imagination), 혁신능력(Innovation), 통찰(Insight) 등의 'I'일 것만 같은데요, 잡스에게 물어볼 수가 없군요.


* '라따뚜이'는 '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을 만든 브래드 버드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입니다. 픽사의 탁월한 창의성·혁신성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싶은 분께는 책 '창의성을 지휘하라'를 추천합니다. 저자는 픽사의 최고경영자 애드 캣멀입니다.


외화번역가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