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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8> 손세실리아 시인과 시집 '꿈결에 시를 베다'

제주 앞바다 폐가가 나를 불러서, 詩 읽는 카페를 차렸어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4-17 18:57:42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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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
우르르 우르르
덤으로 딸려왔습니다


- 책만 달랑 사가는 손님도 별로다
- 차도 마시고, 바다도 보고
- 시인의 마음이 되려는 손님에게
- 시인이 좋아하는 시집을 판다

"섬에 들었다." 제주특별도 제주시 조천읍에서 북카페 '시인의 집'을 연 손세실리아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집과 제주를 오가고, 문학 행사에도 참여하느라 매일 제시간에 카페를 열지 않기에 일정을 미리 맞추었다. "유채꽃과 벚꽃이 함께 핀 길을 함께 걷자"는 그의 말을 따라, 만남은 이달 초에 이루어졌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두 권의 시집 '기차를 놓치다'와 '꿈결에 시를 베다',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이 있다'를 냈다. 첫 시집 '기차를 놓치다'에 수록된 '곰국 끓이던 날'은 2013년 중3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모정을 담아낸 이 시는 학생들보다 그 어머니들의 마음을 더 울렸다. 그의 시에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와 가족, 소외된 이웃, 노숙자,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족…. 그래서 그의 시집을 읽고 나면 '살아내느라' 고달프고 힘들었던 날들을 위로받은 기분이 든다.
손세실리아 시인이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북카페 '시인의 집' 서재 앞에 앉았다. '시인의 집'은 시인이 좋아하는 시집을 전시하고 카페를 찾는 손님에게 시 읽기를 권한다. 카페 서가 옆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육지의 시인, 섬사람이 되다

그가 섬에 든 지는 햇수로 8년째다. "문학 행사 등으로 왔을 때 제주는 여행지 이상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올레길을 걸으면서 제주가 마음에 들어왔죠." 언제부턴가 시 작업에 몰두할 때면 그의 머릿속에 제주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자주 찾아왔고 '한라산' '기차를 놓치다' 등 많은 시를 제주에서 탈고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제주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조천의 바닷가에서 한 폐가를 만났지요."

폐가를 만난 순간은 시 '바닷가 늙은 집'에서 이렇게 그려졌다. 그가 제주도에서 머물면서 쓴 시를 모은 '꿈결에 시를 베다'에 수록된 시다.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끌림으로/빨려들 듯 들어섰던 것인데요 둘러보니/폐가처럼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뼈대란 뼈대와 살점이란 살점이 합심해/무너뜨리고 주저앉히려는 세력에 맞서/대항한 이력 곳곳에 역력합니다"

카페 전경.
조천초등학교 뒤편, 바닷가에서 백 년을 견딘 늙은 집을 보는 순간 시인은 "내 인생의 로또"라는 기분이었다. 코앞에 바다가 있는 카페를 열고 싶었고, 돌담도 보고 싶었던 터다. 깊고 푸른 바다 앞에 혼자 있는 건 은근히 겁나는데, 마을이 둘러싸고 있으니 또한 감사했다. 1년여에 걸쳐 폐가를 수리했는데, 기둥과 대들보 등 집의 뼈대를 그대로 살렸다. 마루는 해체되어 튼실한 탁자로 다시 만들어졌다. 귀한 집을 얻은 시인의 마음은 '바닷가 늙은 집'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표현됐다.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우르르 우르르 덤으로 딸려왔습니다//어떤 부호도 부럽지 않은/세금 한 푼 물지 않는"

그는 "내가 이 집을 선택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집이 나를 부른 것"이라고 고백했다. 카페에서 내다보면 바로 아래에 바닷물이 찰랑거린다. 태풍이 불면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 집은 이 자리에서 백 년을 탈 없이 서 있었다"고 답했다. 그 세월을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고.

■시집이 최상의 예우 받는 시인의 집

꿈결에 시를 베다- 실천문학사 2014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라서 '시인의 집'이 아니다. "카페 문을 열고, 커피를 마시면서 조용히 시집을 읽는 시간이 좋아요. 그러고 싶어 이 공간을 꾸민 거니까요. 시를 안 읽은 지 한참 됐다는 분들이 이곳에서 다시 시집을 읽는다고 말할 때,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줄 때 저도 행복합니다. 이곳에 오는 모두가 시인의 마음이 될 수 있는 집, 그래서 '시인의 집'이에요." 그는 그런 마음으로 자신이 수 십 년간 읽어온 시집, 가장 귀한 자산들로 카페의 한 벽면을 가득 채웠다. 시인이 되기 전부터 그의 마음결을 쓰다듬어 주었던 시집들이 이제는 손님들의 마음을 안아주기를 바라면서.

그의 시 '시집 코너에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단골 서점이 문을 닫았다/시는 모든 예술의 기초라며/베스트셀러 자리에 시집 진열을 고수하던/서점주의 무릎뼈가/대형유통업의 일격에 우두둑 꺾인 게다"

그래서였을까. 카페에서는 시집을 판매한다. 그가 먼저 읽어보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시집을 저자 승낙 후 출판사와 의논해 구입한다. 작가에게 부탁해 친필사인도 받는다. 그는 시인들이 시간을 내어 친필사인을 해주는 것에 고마워하고, 시인들은 "시집이 안 팔리면 그걸 손 시인이 다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걱정한다. 책만 사 가려는 손님도 거절이다. 이 책 저 책 읽어보고, 차도 마시고, 바다도 보고, 기꺼이 시인의 마음이 되는 손님에게 책을 판매한다. 시를 최대한 공유하고, 시집이 최상으로 예우받는 아름다운 서점이다. 그 서가를 지켜주고 있는 것은 작은 '평화의 소녀상'이다.

소녀상이 있는 바닷가 카페에서 시를 쓰는 그는 시 '내 시의 출처'에서 "시시각각이 다채로운 조천 앞바다를/몇 줄로 요약할 재간이 없으니/유구무언일밖에"라고 말했다. 그를 향해 달려오는 모든 바다가 '시'였다.

책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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