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처럼 질주하는 차
- 썬더 버드를 타고
- 벼랑 끝에 선 두 여자
- 서로의 손을 꼭 맞잡고
- 전에 없이 벅찬 얼굴로
-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영화사(映畵史)에 길이 남을 두 여성 캐릭터를 소개합니다. 델마와 루이스입니다. 이번 로드무비(road movie)의 주인공인데요, 훗날 '글래디에이터'와 '프로메테우스'를 감독한 거장 리들리 스콧이 빚어냈습니다. 그녀들이 길 위에 쓴 자유의 날갯짓은 도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도 올라있습니다.

그림=헌즈 작가

미국 아칸소 주 작은 마을 출신 가정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웨이트리스 루이스(수전 서랜든)는 우정으로 맺어진 영혼의 짝입니다. 그들은 공통점이 둘 있습니다. 하나, 사는 게 재미없습니다. 둘,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존중받지 못합니다. 이들 공통점이 그들을 길 위에 올려놓는데요,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그들이 종종 들었을 법한 말이 있습니다. '즐기면서 재미있게 살아.'

재미있는 삶의 방향과 길 그리고 자존감을 찾고 싶어진 그들이 짠 여행 목록은 무척이나 소박합니다. 주말 동안 산에서 캠핑과 낚시를 즐기는 것. 그걸 통해 더 활짝 트일 자유를 만끽해보는 것. 문제는 이 꿈이 하루도 못 가 산산조각 부서진다는 것입니다. 첫날 저녁, 루이스가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잠시 도입부에 돌아가 그들이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델마의 남편은 양탄자 세일즈맨입니다. 아내를 노예처럼 대하는 그에게 델마는 집이라는 이름의 진열장 속 마네킹일 뿐입니다. 거친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거짓말에도 능합니다. 델마는 그런 그에게 애정이 식어 있습니다. 루이스의 연인은 정착할 의지가 없는 떠돌이 뮤지션입니다. 루이스는 그런 그에게 지쳐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두 여성에게 그들의 존재는 '영혼의 반쪽'과는 거리가 멉니다.

다시 첫날 저녁. 장소는 어느 노변 술집. 한 호색한이 델마에게 접근해 댄스를 청합니다. "너에게 수작을 거는 거야(He is hitting on you)." 루이스가 경고해보지만 춤에 젖고 술에 취해 심신을 못 가누던 델마는 으슥한 주차장에서 성폭행당할 위기에 놓입니다. 극적으로 등장한 루이스는 호색한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버립니다.

그 후로도 델마와 루이스는 여러 남성에게 성적 위협의 표적이 됩니다. 웨이트리스였던 경험을 살려 각본을 쓴 여성 작가 캘릭 코리는 두 여자의 목소리를 빌려 비판합니다. 여성에게 가하는 남성의 성적 위협과 가부장주의로 위장한 남성의 지배욕을 발가벗기듯이…. 누군가에게 경고할 때나 방아쇠를 당길 때 마치 수류탄을 투척하듯 뱉는 그녀들의 언어는 남성의 폭력성에 대한 저항과 응징의 무기로 기능합니다.

"네놈은 재미나 좀 보려했다지만 여자가 저토록 옷이 찢긴 채 흐느낄 땐 그녀가 절대로 재미있다는 게 아냐." "네놈처럼 누군가가 네놈 어머니나 여동생, 부인한테 추잡한 말을 배설하면 넌 좋겠나?" "특히 아내에게 잘 해줘. 내 남편은 나에게 그래 주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지금처럼 달라진 거야."

지명수배자가 된 그들은 국경을 넘기로 결심합니다. 정당방위였음에도 그걸 밝혀줄 목격자나 증인이 없고, 자수해봤자 경찰도 진실을 안 믿어줄 거라 판단한 델마와 루이스는 안전한 피난처로써 멕시코를 택합니다. 그들에겐 새 꿈이 생깁니다. 해변에 누워 마가리타를 홀짝이고, 목장을 사고, 휴양지에서 일해 돈도 벌고….

"난 지금만치 깨어있는 기분을 느껴본 기억이 없어(I don't remember ever feeling this awake)." 델마는, 살면서 어쩌면 처음 맛본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지난 며칠의 여정을 떠올리다가 그렇게 고백합니다. 루이스는 터질 듯이 밝은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그들의 차는 1966년 모델 'T-버드(Thunder Bird)'입니다. 새처럼 질주하고 싶은 욕망을 상징하는 차종일 테겠지요. 하지만 숱한 암초가 그들의 날갯짓을 가로막습니다. 사기꾼에게 거액의 비상금까지 털린 델마는 급기야 주유소 편의점을 텁니다. 여러 정황상 그들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판단하는 형사는 협상 가능성을 열어놓습니다. 하지만 연방경찰까지 합세한 후 검거 작전은 두 여인을 '막다른 길'에 몰아넣습니다.

로드무비답게 영화는 곳곳에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펼쳐놓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내밀린 현실 속 풍경은 너무나 어둡고 위태롭습니다. 하루는 루이스가 홀로 처연하게 별들을 바라봅니다. 어릴 때 겪은 성폭력의 악몽을 씻어보려는 의식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델마는 루이스가 왜 첫날 저녁에 방아쇠를 당겼는지 깨닫습니다.

'암흑 속에서 친구와 함께 걷는 것이 빛 속에서 홀로 걷는 것보다 좋다(Walking with a friend in the dark is better than walking alone in the light).' 그렇게 헬렌 켈러가 말했지요. 델마와 루이스는 각자 서로를 밝혀주는 '위로와 지지의 등불'임을 거듭 확신합니다. 마침내 내면의 어둠을 걷어낸 그들은 멕시코 국경을 향해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을 마지막 질주를 시작합니다.

대단원에 이르면 경찰차가 벌떼같이 추격합니다. '막다른 길(dead end)' 앞에 멈춰선 델마와 루이스는 서로의 손을 움켜잡습니다. 그 행위가 경찰에 투항하자는 뜻의 다짐일지, 못 다 채운 자유를 향해 멈춤 없이 날자는 뜻의 다짐일지…가려둡니다.

영화의 '결말(end)'이 '생의 끝(dead)'을 향해 내닫는 그것일지, 아니면 그런 상상이나 예상을 뒤집는 반전의 결말일지도 가려둡니다. '델마와 루이스(Thelma and Louise)'를 대표할 '결정적 한 장면'일 것이기에….


※ 닮은꼴 소설로 할레드 호세이니가 지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추천합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희망의 꽃을 피워낸 두 여자의 운명적 우정을 그린 수작입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