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시사만화협 작가들과 만나
- 표현의 자유 등에 속깊은 대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받침대에서 내려와 앉았다. 퀭한 표정에 어깨가 처진 석고상이 들여다보는 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 이 그림을 그린 최해솔 작가는 “기술은 발달했지만, 사유하기를 멈춰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날카롭고도 재치있는 그림 한 컷으로 핵심을 건드리며 보는 이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 ‘만평’의 힘일 것. 신문의 쇠퇴와 함께 입지가 좁아져버린 시사만화이지만, 여전히 ‘드로잉’을 이어가는 부산의 시사만화협회 작가들과 미국시사만화협회장 팻 배글리(Pat Bagley)가 지난 19일 부산대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만났다. 팻 배글리 씨는 미국 ‘솔트레이크트리뷴’에서 40년 넘게 만평을 그려온 만화가로 트럼프 대통령 풍자로도 유명하다.

	지난 19일 오후 부산대에서 열린 시사만화 워크숍에서 미국 시사만화가 팻 배글리(오른쪽) 씨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시사만평은 상징을 많이 활용하는 것 같은데, 여러분의 만평을 볼수록 한국 정치상황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지네요.” 부산 작가들이 준비한 작품을 본 팻 배글리 씨가 말했다. 그림 주제는 다양했지만 세월호 사건과 지난 정권에 대한 풍자가 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 데 대한 얘기다. 세월호 사건을 알고 있다는 그는 작품 속 세밀한 표현의 의미에도 관심을 보였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미국의 시사만화 현황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시사만화가의 입지가 좁아진 현실은 미국도 다름없다는 그는 “종이신문의 쇠퇴와 흐름이 같다. 내가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미국 전역 200~250명 수준이던 만평작가 수가 지금은 35~4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인력 감축 때 가장 먼저 조정되는 영역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신문사에 고용되지 않고 온라인에 직접 게재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워크숍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캔버스와 같은 그의 재킷은 특히 인기였다. 석 달 전부터 흰색 재킷에 의미 있는 것들을 직접 그려 넣은 것. 그는 “미완성이다. 세탁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띄웠다. 행사는 팻 배글리 씨와 부산 작가들이 서로 작품을 간단히 소개하고 토론 후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팻 배글리 작가는 오는 23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대 만화축제인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참가할 예정이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