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대 집안 정혼으로 부부의 연
- 중국 반우파투쟁으로 22년 생이별
- 늙은 시어머니와 아이 다섯 부양
- 끝까지 가정 지킨 아내에 대한 사랑
- 계산하는 오늘날의 사랑에 긴 여운

오늘의 사랑 옆에는 정열 대신에 계산기가 단정히 놓여 있다. 사귀는 남녀는 상대방의 재산과 학력과 부모의 능력을 꼼꼼하게 따져본다. 조금이라도 손해가 나면 만남은 비틀대다 깨져버린다. 신분과 학력과 재산을 훌쩍 뛰어넘는 낭만적 사랑은 멸종 위기에 처했고, 드라마 속에서 판타지로 변해 근근이 목숨을 이어 나간다. 낭만적 사랑은 어딘가에 존재하나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유토피아로 변하고 있다. 사랑은 이제 학습된 열정이고 서로를 사고파는 소비 행위다. 아픈 현실이다.

저자 핑루 할아버지가 아내 메이팅과 함께한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그림. 윌북 제공

하지만 이 시대가 아무리 사랑을 팽개치고 계산기가 더 미래를 보장한다 외쳐도 사랑의 위대한 힘은 살아 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이 책을 쓴 핑루 할아버지에게서 본다.

핑루 할아버지는 1922년 중국에서 태어나 올해 95세다. 핑루는 항일전쟁, 공산정권 수립, 문화대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을 겪었지만 그가 꼽는 일생일대의 사건은 아내 메이탕을 만난 것이다. 관료 집안에서 태어난 핑루는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국민당 군대에서 근무하던 1946년,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다. 휴가를 내고 집으로 와 정혼하라는 내용이었다.

핑루는 귀가해 메이탕을 처음 만났다. 핑루의 아버지가 그 아가씨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인생 대사가 이렇게 결정되었다. 젊은 두 사람은 그냥 웃기만 했다. 2008년 사별할 때까지 둘은 다섯 아이를 키우며 60년을 함께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핑루는 두 사람의 만남과 결혼, 이별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빠짐없이 쓰고 그린 화첩 18권을 남겼다. 2013년 화첩을 한 권에 담아 출판했는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다.

핑루가 그린 사실적인 그림 곳곳에 붙인 글귀 중 제일 가슴 아픈 구절은 이 한마디이다. “1957년, 정세가 급변했다.” 뒤이어 문장이 이어진다. “1958년 9월 28일, 나는 안후이성으로 노동 개조를 받으러 떠났다.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중국 정부의 반우파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뒤 핑루는 안후이성에서 가족과 22년이나 떨어져 일년에 춘절 한 번만 만나는 생이별을 한다. 메이탕은 성분이 불량한 집안에서, 늙은 어머님과, 기울어가는 살림에 다섯 아이들까지 집안 대소사를 혼자 꾸려 나간다. 생활에 쪼들린 그녀는 상하이박물관 공사장에서 25㎏ 시멘트 부대를 지는 일을 하기도 한다.

당국은 남편과 이혼하기를 종용하나 메이탕은 남편이 매국노도,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도 아니라며 거부한다. 반우파투쟁 때문에 피해를 본 집안에서 아내가 도망가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온 가족이 서로 반목하다 패가망신한 집들이 많았다. 핑루와 메이탕은 이 괴로움을 이겨낸다. 부부는 서로 믿고 의지한다. 단 한 번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메이탕의 소원은 늙으면 핑루와 같이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 먹는 소박한 삶일 뿐이었다.

마침내 1979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정세가 다시 바뀌었다. 핑루는 상하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이 모여 사진을 찍는다. 다섯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 결혼하고 직장을 찾았다. 핑루와 메이탕이 만난 지 60년이 지난 2008년, 메이탕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핑루는 기원한다. 다음 세상에 다시 만나 부부의 연을 이어가게 되기를 바란다고.

핑루와 메이탕은 어떤 계산도 하지 않고 그들 부모가 정해줘 부부가 되었다. 둘은 조건 없고 타산하지 않는 사랑을 했으며, 지극정성으로 서로 아끼고 고난을 헤쳐 나간다. 남녀가 조건만 따져 결혼을 생각하는 오늘 세태는 건강한가. 메마른 시대가 그만큼 몰아갔다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혼은 행복할지 의문이다. 오히려 그 따져드는 조건에 화상을 입거나 비극과 환멸을 얻기 일쑤다. 돈의 힘에 밀려 점점 더 사랑할 힘을 잃어가는 오늘, 핑루와 메이탕의 순박한 연애에 귀를 기울인다. 부부는 정말, 60년 진한 연애를 했다.

소설가·‘작가의 드론 독서’ 저자